전주형 청운대 교수

 

독서와 여행은 닮은꼴이 많다. 우선 두 가지 모두 우리 삶에서 점차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더 많은 책을 읽겠다거나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겠다는 것이 삶의 흔한 목표다. 삶의 수준이 향상될수록 독서와 여행이 삶의 필수품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행시장만큼 독서시장 성장이 빠르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여행에 참여하는 사람은 증가하지만 독서에 참여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2016년 독서 인구는 성인 10명 중 4명은 연중 1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1인당 독서량도 8.3권 정도로 많지 않다. 반면 여행시장은 국민 1인당 연중 12회 정도의 여행에 참가하며 해외여행에 참여하는 여행자는 국민의 3분 1가량으로 성장했다. 전자는 성장이 느린 반면 후자는 빠른 것이다. 그렇지만 여행은 물론이고 독서 인구가 과거에 비해 감소한 것은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우리 삶의 질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고 자아실현의 방편이 되고 있다.

독서와 여행은 출발점도 닮았다. 독서나 여행을 하지 않으면 고인 물이 썩듯 우리 삶도 쉽게 타성에 젖어버릴지 모른다고 말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세계에 갇히지 않으려면 책을 읽거나 여행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작정 책을 읽으면 된다거나 자랑거리 삼아 읽는다면 곤란하다. 베스트셀러를 읽어 공동의 관심사에 뒤처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의미가 반감된다. 피상적이거나 지식 전달의 수단으로 읽어도 즐거움은 사라진다. 이런 것은 독서나 여행에 참여하는 소극적 이유일 뿐이다. 적극적 이유는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책 읽는 그 자체에 있다. 즐거움은 그 진리를 발견하는 결과에 있지 않고 그것을 탐구하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아무런 목적 없이 읽어도 얻게 되는 즐거움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이 경우 책을 읽는 것과 삶이 따로 구별되지 않는다. 두 번째 즐거움은 독서로 인하여 사유와 지혜가 깊어지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과거에 간과했던 것도 새롭게 해석하게 되며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게 된다.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있지 자연 속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독서와 마찬가지로 여행도 비슷하다. 여행을 이탈, 떠남, 외도로 간주하여 마치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틀에 박힌 일상을 벗어나려는 목적에서 여행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여행은 소비적이고 일탈적일 수밖에 없다. 진부하고 가식적이게 된다. 그와 같은 여행은 현실의 골치 아픈 것이나 힘든 것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 줄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는 순간 또 다시 일상의 틀에 박히게 되고 삶의 변화는 미미해질 뿐이다. 여행 가방을 싸고 어느 날 자기 집을 떠나는 것을 여행이라 생각한다면 여행과 현실의 차이를 메울 수 없다. 현실 따로 여행 따로는 마음만 공허해진다.

독서와 여행의 방법은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도 닮았다. 덮어놓고 ‘책을 많이 읽어라’ 혹은 무작정 ‘여행을 많이 해라’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독서 지도사나 여행가이드 설명이나 안내가 독서와 여행에서 지침이나 힌트가 되지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도 곤란하다. 그런 것은 자신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관심과 거리가 있어 지루하거나 지식의 차이로 힘이 부치는 책도 마주친다. 그런 과정을 겪다보면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독서의 길이 열린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고의 창을 열거나 좋은 문장을 만나 마음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다. 그 창은 결코 좁지 않으며 파문은 작지 않다.

독서의 즐거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이다. 게다가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하여 새롭게 활용하려는 것이 독서의 힘이다. 여행의 안목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여행에서 만나는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 이색적인 만남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낯선 곳에서 역사학, 종교학, 인류학, 사회학, 인물, 문학, 예술 등을 적극적으로 만나는 행위다. 시야가 넓어지고 가치관이 변한다면 삶의 질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독서는 머리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발로 하는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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