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생신잔치

금강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효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임석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를 온라인판을 통해 연재합니다. ☞본보 2017년 8월 9일자 10면 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세대로, 임석원의 에세이는 그 시대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해 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곁에서 묵묵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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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생신잔치

5월 하순 외할머니 생신잔치를 우리 집에서 차렸다. 잔칫날 한, 두 주 전부터 준비를 했으리라. 집안 청소부터 손님들 잠자리 준비, 이부자리 빨래, 서너 가지 김치 담그기 등은 기본이지 않았겠는가? 그때에 무슨 출장 뷔페가 있었겠는가? 혹 있었다 하더라도 일할 며느리를 두고서 돈 들여 출장뷔페 음식을 주문할 어머니가 아니잖은가. 잔치 준비고 음식 장만이고 다 아내 혼자 감당해야 할 일들이었다.

아들이 사우디에서 벌어 온 돈 갖고 서울에 아들 집도 사고, 또 불린 돈으로 금산에 땅도 샀다. 또 아들이 싱가포르 나가서 대전 가양동 새 주택단지에 새 집도 장만했다. 3년 연거푸 큰 재산 3건을 장만하였다. 어머니는 친정 부모님들과 친정 형제자매들에게 금산 땅과 새 집을 보여드리며 자랑하는 행사로 봄에 외할머니의 생신을 우리 집에서 차린 것이다. 또 여름에는 친할머니의 생신잔치를 친가쪽 형제자매들을 모시고 우리 집에서 차릴 예정이었다. 그야말로 빈주먹으로 객지에 나와서 성공한 당신들의 모습을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에게 보여드리는 잔치다. 웃음 띤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 모습을 그려보며 큰아들로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아내는 외할머니 생신잔치 2박 3일 동안 무진 고생을 하였다.

다음은 이러한 우리 집의 역사를 보여주는 아내의 편지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밤 12시를 알리는 시계 종소리를 들으며 당신에게 편지를 쓴답니다.

단둘이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여….

(중간 생략)

5월 25일부터 오늘 27일까지(연휴라) 연사흘 20여 명이나 되는 대손님을 치르느라 팔다리가 빠져 달아나는 것처럼 아프고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해 매우 피곤했답니다. 당신에게 편지 써야 할 시간이 없어 매우 속상해도 당신의 아내로서 임 씨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외할머니 생신이지만(딸들과 며느리들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서 하는 잔치이기에 당신 얼굴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금방 쓰러질 것 같아도 얼굴에 웃음을 띠며 이를 악물고 손님을 치렀습니다.

오늘 낮에 모두 돌아가시고 그 지친 몸을 이끌고 그래도 전화로나마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모든 피곤이 싹 풀리고 위안이 되겠지 했는데…. 당신 전화도 없고 매우 실망이 되어 사흘 동안 쌓였던 피곤이 몰려오는군요.

(중간생략)

당신 친할머니 생신도 올해는 우리 집에서 찾으신다고 하는군요.

할머니 생신은 7월 25일인데 한여름이니 보통 걱정이 아니군요. 그러니 당신 휴가는 당신이 잘 생각해서 잡도록 하세요.

1985. 5. 27. 밤

당신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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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석원은...

1956년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한남대를 졸업한 후 1980년 S그룹 S건설에 입사해 23년을 근무하면서 사우디·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8년간 생활했다. 2003년 영국 유통회사 B&Q 구매이사, 2004년 경남 S건설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9년 H그룹 H건설에 입사해 리비아에서 자재·장비 구매업무를, 2011년 E그룹 E건설에 입사해 중국과 동남아 대외구매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전북 J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3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미군부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분당 판교지역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엔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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