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지구촌 스포츠 대축제인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민족 최고의 명절인 설을 맞은 감회가 유별나다. 얼마 전까지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전쟁 위험지역이었음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간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 8·15 경축사, UN 총회 연설 등을 통해 남북간 화해협력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주변 4대국과 국제사회에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그런 힘겨운 노력으로 새해 들어 꽉 막혀있던 남북대화가 복원되고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면서 강경 일변도였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남북대화와 평창올림픽을 통한 평화 분위기 조성을 지지하고 나섰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전기(轉機)가 어렵사리 마련된 것이다.

물론 같은 올림픽이라도 지구촌 최대 축제는 대개 하계올림픽을 일컫는다. 인기 종목 톱 20에 동계 종목은 아이스하키 하나가 겨우 낄 정도로 인지도나 인기, 규모 면에서 하계올림픽이 동계올림픽보다 훨씬 월등하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평창동계올림픽에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안한 것도 이래서일 것이다. 남북단일팀은 그간 여러 번 구성됐지만 올림픽의 경우엔 이번이 처음인 만큼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번 단일팀 구성은 예전과 달리 우리 팀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제한한다고 비판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야당과 언론의 계속된 문제 제기로 우리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불공정 시비로 번지기도 했지만, 평화 증진의 대외적 의미가 부각되며 어렵사리 봉합됐다.

하지만 언론의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부정적 기류는 여전해 급기야 한 언론의 인터뷰 조작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단일팀 반대 여론을 부각시키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의 6개월 전 인터뷰 영상을 마치 현장을 연결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이밖에 단일팀이 쓰는 약칭 ‘COR’이 북한 국호라는 거짓 정보들이 블로그와 트위터에 확산됐지만, 북한의 약칭은 ‘PRK’로 밝혀졌다. 단일팀 유니폼 디자인이 북한 인공기를 본떴다는 루머 또한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이 디자인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올림픽을 위해 4년간 고생한 우리 팀 선수가 북한 선수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선수 교체가 잦은 경기 방식을 고려하면 우리가 치를 다섯 경기에 온전히 출전하진 못해도 각 선수가 최소 2.5경기에는 나가는 등 선수들이 감내할 수준은 된다고 한다.

이렇게 실질적 증거도 없이 대중들의 감정적 욕구에 호소하는 미신적 행태의 화룡점정은 단연 ‘김일성 가면’ 파동이다. 젊은 미남의 가면을 쓰고 단일팀을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 모습에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란 제목을 붙여 전한 포토 뉴스가 발단이었다. 해당 언론사는 자사의 사진 보도가 잘못된 추론에서 비롯된 명백한 오보임을 사과하면서 이를 정부와 올림픽 ‘흠집 내기’ 소재로 삼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한때 조국 통일을 꿈꾸던 주체사상파로 독재정권에 맞서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하태경 의원이 “문제의 가면은 김일성이 맞으며 북한의 신세대 우상화 전략을 실험한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자 “색깔론의 거두인 자유한국당조차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음에도 쓸쓸히 홀로 주장하는 줏대가 참으로 가상하며 그만하면 됐다”라는 정의당의 논평이 나오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념 강박증에 빠져 전장에서 적을 섬멸하듯 폭력적인 집단행동을 벌이는 ‘태극기 부대’와 하 의원의 심리상태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근거 없는 자기 확신의 미망에 빠져 사실과 왜곡된 희망을 혼동해 이렇게 터무니없는 미신을 믿게 되는 것이다. 태극기 부대가 굳이 성조기를 드는 것도 그렇다. 청교도들의 시대 이후 아메리카에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해 하나님의 미래를 준비하는 최후의 국가가 되겠다는 미국의 묵시록적 세상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 개신교의 특성과 미군정기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종말론적 미신에 맞서 이성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만이 우리에게 시민적 품위를 회복하게 해줄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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