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향열 7대 대전시 안전행정분야 명예시장(대한산업안전협회 대전지역본부장)

 

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를 지나 절기(節氣)는 봄에 한걸음 더 다가섰지만, 강원도 평창에서는 세계 최대의 겨울 스포츠 행사인 동계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듯 아직도 세상은 동장군의 위세에 눌려있다.

하지만 그 맹위도 꺾일 날이 머지 않았다. 지구촌 화합의 장인 올림픽을 통해 남과 북이 함께하면서 서로의 차가웠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사방에서 더디지만 따스함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 국민과 국토의 모든 곳에 ‘해빙기’가 찾아오고 있다.

해빙기는 원래 겨울철 얼음이 녹아 풀리는 때를 칭하는 말로, 대립 중이던 세력 간에 긴장이 완화되는 분위기나 힘든 과정을 벗어나 행복한 시기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비유적으로 많이 쓰인다. 희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와 같이 안전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빙기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안전 인(人)'들에게 해빙기는 극도의 긴장과 주의를 요하는 불청객 같은 의미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2월 중순부터 3월까지 해빙기에는 겨우내 땅속에 스며들어 얼었던 물이 녹고 다시 어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지반이 연약해지거나 콘크리트 내부에서도 팽창하려는 힘이 작용하여 건축물, 절개지, 축대·옹벽, 교량 등 각종 시설물에 균열 및 붕괴가 발생할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실제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07~2016년) 해빙기 낙석·붕괴 등의 안전사고는 절개지(54%), 축대·옹벽(21%), 건설공사장(19%) 순으로 다발했다. 사상자는 건설공사장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해빙기 안전사고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심’이 필요하다. 항상 주변에 위험요인이 없는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며, 발견 시에는 즉각적인 안전조치에 나서야 한다.

상황별로 살펴보면, 먼저 공사장 주변 도로나 건축물 등에 지반침하와 균열로 인한 이상 유무가 없는지 잘 확인해야 한다. 특히 지하 굴착 공사장의 경우 주변에 추락 또는 접근금지 표지판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는지, 건물 벽에 균열이나 기울어짐, 무너질 위험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또한 절개지나 암반 등에 대해서는 토사나 낙석이 흘러내린 흔적이나 위험이 없는지, 낙석방지망 등의 시설은 제대로 설치되어 있는지를 확실히 체크해야 한다. 이렇듯 해빙기 위험요소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때문에 산업현장은 물론 시민들 모두가 일상생활 주변을 세심히 점검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안전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의 말처럼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현대사회는 위험사회임이 분명함에도, 그 복잡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안전을 완벽하게 확보해주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필자는 현 시대에서 안전은 시민들의 권리인 동시에 시민 각자가 책임져야 하는 의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안전은 99%를 잘하더라도 1%를 잘못하면 실패하는 것이다. 오로지 100% 잘 해야만 비로소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절대적 완벽성 때문에 안전은 누구나가 소중히 인식하고 지켜야 할 중요 이슈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안전 취약시기 중 하나인 해빙기를 앞두고 이 같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참여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해빙기에 본격 접어들기 전에 관계기관과 시민들은 재난발생 우려가 높은 취약시설물과 지역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이상 징후 발견 시 소방기관 등 재난안전 관련기관에 즉시 알려 제거 조치해야 한다. 특히 해빙기 사고 위험이 더욱 큰 공사장 등 산업현장에서는 기본원칙과 안전수칙을 빈틈없이 준수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이 어느 때인가.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동계올림픽이 이 땅에서 열리고 있다. 사고 발생 시 직접적인 피해에 더해 수 십 년을 공들여 쌓은 국가 이미지가 한순간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까지 지구촌 모두의 행복한 기억으로 남고, 우리나라가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전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유비무환의 자세로 해빙기 안전사고 예방에 적극 동참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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