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가 자살한 원인이 ‘태움’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문제로 등장하는 분위기다. 태움이란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들들 볶다 못해 영혼까지 태울 정도로 괴롭힌다는 의미의 속어로 쓰인다. 이를 견디다 못해 자살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태움 문화는 생명을 다루고 조그만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는 의료계가 더 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만 20~63세 성인 남녀 임금근로자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3.3%가 최근 1년 동안 최소 1번 이상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빈도는 46.5%가 ‘월 1회 이상’, 25.2%가 ‘주 1회 이상’이었으며 ‘거의 매일’이라는 응답자도 12%에 달했다.

이같이 괴롭힘에 시달리면서도 응답자의 60.3%는 ‘특별히 대처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대처하더라도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아서’(43.8%)나 ‘대처했다가 직장 내 관계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29.3%)가 주로 많았다. 실제로 괴롭힘에 대처하더라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는 경우가 53.9%로 효과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직장 내 괴롭힘은 수직적인 업무구조와 경직된 조직문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기성세대들이 과거 자신들이 입었던 상사의 일방적인 지시나 압박 등의 경험들을 신입직원들에게 대입해 적용하려는 습성이 남아 있어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신세대들과 갈등을 겪는 일도 적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괴롭힘을 받은 사람은 면역력을 약화시켜 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집단에서 위협을 받으면 스트레스가 증가해 면역체계가 교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단순히 직장 내부에서 해결하도록 방치할 문제는 아니다. 수직적인 조직 내에서 괴롭힘을 개인이 스스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사전 교육을 강화해 타성에 젖은 일부 상사들의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괴롭힘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을 마련함으로써 예방과 함께 실효성 있는 규제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행동일지라도 이제는 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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