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관섭 배재대 비서팀장/ 전 대전일보 기자

 

주말이 포함된 4일간의 설 연휴였지만 당일치기로 고향에 다녀왔다. 명절날 새벽에 출발해 차례 지내고 세배 받고 성묘한 후 점심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이 차로 한 시간 조금 넘는 거리인 데다 조카들이 장성해 가정을 이루고 있어 큰집의 번잡스러움을 덜어드리자는 핑계가 이제는 정해진 명절 스케줄이 됐다. 3대가 모이면 수십 명이 족히 넘으니 아무리 넓은 집이라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풍경도 조금 지나면 보기 어려울 듯하다. 명절에 모이는 아이들의 숫자가 점차 줄고 있으니 어른들만 모이는 풍경이 연출될 날도 그리 머지 않은 것 같다.

고향집 가는 길에 모교인 초등학교가 있다. 차창 밖으로 본 학교의 모습이 너무 작아 보였다. 본디 졸업한 지 한참 후 학교를 가보면 모든 것이 작게 보이는 법이지만 건물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교실도 몇 칸 되지 않았다. 알아보니 학년 당 1개 학급에 유치원생까지 해도 전교생이 10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 인근에 공단이 속속 들어서면서 들어온 유입인구 덕분에 폐교당하지 않고 학교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다. 저출산 여파로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올 신학기를 앞둔 전국 초·중·고교 중 신입생이 단 한 명도 없는 학교가 54개교, 한 명뿐인 학교도 59개교에 달한다. 지난 1982년부터 현재까지 폐교한 학교 수는 3700개교가 넘는다.

사실 정부의 저출산 극복 대책은 그동안 수없이 발표됐다. 지난 12년간 이 정책에 쏟아 부은 예산만도 126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돼 지난해 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로 35만~36만 명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한마디로 저출산 대책은 예산만 날리고 실패했다는 결론이다. 역대정부가 펼쳐온 대표적인 저출산 해결 정책은 노동개혁, 교육개혁, 청년고용대책은 물론 심지어 중학교 자유학기제, 다문화가족 안착을 위한 대책 등이 포함돼 있다. 저출산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한 것인 만큼 해결책도 종합적이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해왔다. 이처럼 사회 문제를 총망라한 정책은 오히려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최근에 ‘한국이 소멸한다(전영수 지음)’라는 책을 접했다. 제목부터 섬뜩하지만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인구 통계와 세대 분석을 근간으로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지를 2018년과 2020년, 2030년에 벌어질 미래 시나리오를 통해 심층적으로 접근한다. 저출산은 기성세대가 후속세대를 위해 양보하고 배려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청년층의 복수극이자 기득권을 위한 노예공급을 거부하겠다는 생존전략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결국 일본의 사례처럼 중년층과 청년층이 서로간의 긴밀한 연대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6기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가 새로운 접근방식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핵심은 '개인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는 사람중심 정책으로의 전환'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와 이념보다는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긴 안목으로 접근할 때 대한민국을 소생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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