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명예교수

 

소년의 다기(多氣)하여 공명(功名)의 우의(有意)터니
중년의 깨달아자 부운(浮雲)이라
송하(松下)의 일당금서(一堂琴書)가 내 분(分)인가 하노라
 

다기는 마음 단단하여 웬만한 일에는 두려움이 없음을 말하고, 일당금서는 한 집과 거문고와 책을 말한다.

젊은 시절엔 혈기가 왕성하여 공명에 뜻을 두었는데, 중년이 되어 깨닫고 보니 공명은 뜬구름이라. 큰 소나무 아래 초막을 짓고 거문고, 책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내 분수인가 하노라.
소년시절에 세웠던 이상을 중년에 와 포기했다. 중년에 와 뜬구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연을 찾아 초막을 짓고 거기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거문고,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내 분수라는 것이다.

늙어지니 벗이 없고 눈 어두니 글 못 볼
고금가곡을 모도다 쓰는 뜻은
여기나 흥을 부쳐 소일코져 하노라

송계연월옹(松桂烟月翁)은 영조 때 가인(歌人)으로 시조집 ‘고금가곡(古今歌曲)’을 편찬했다. 책명은 손진태가 원본 표제의 자형이 떨어져 나가 권말에 수록된 편자의 시조 중장에서 따와 가칭한 것이다. 가집 말미에는 ‘갑신춘 송계연월옹’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자작시조 14수가 전하고 있다.

늙어지니 친구도 없어지고 책을 보자 하니 눈이 어두워 볼 수가 없네. 예와 이제의 가곡들을 모아 한권의 책을 만드는 뜻은 여기에다 흥을 붙여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자 함일세.
송계연월옹은 연대, 인적 사항 미상이다. 시조집에 숙종 때의 가인 김유기(1674~1720)의 작품이 실려 있어 1704년(숙종 30년) 이후의 인물로 추측되고 있다. 초년에는 출세한 듯하며 중년 이후엔 세사를 버리고 산간에 은둔, 시와 가로 유유자적하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집은 1764년(영조 40년)이나 1824년(순조 24년)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천령 올나안자 동해를 구버보니
물밧긔 구름이요 구름밧긔 하날이라
아마도 평생장관은 이거신가 하노라

마천령은 함경남도 단천과 북도 성진 사이의 도계에 있는 재이다. 평생장관은 한평생 두고 볼만한 경치를 뜻한다. 마천령 올라앉아 동해를 굽어보니 물 밖은 구름이요 구름 밖은 하늘이라. 아마도 평생의 장관은 이것인가 하노라. 단순히 마천령에서 동해를 바라보는 자연의 경관에 대해 찬탄만을 노래한 한 것은 아니다. 자연은 유한한 것이 아니다. 산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구름으로 구름에서 다시 그 너머 공간으로 자연을 무한히 확산시키고 있다. 대자연의 경이와 자신의 웅혼한 기상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고금가곡’은 타 시조집과 달리 인륜(人倫)·심방(尋訪)·한적(閑適) 등 ‘단가 12목(短歌十二目)’이라는 제목 아래 주제별로 편찬되어 있다. 도남본과 가람본이 있으며 각각 302수와 305수의 시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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