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선생님, 말하고 듣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 됐지, 이런 재미없는 글을 도대체 왜 읽는 거예요?” 국어 과목을 가르치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국어 수업 무용론에 대한 주장이었다. 내 나라 말과 글이니까 잘 부릴 줄 알아야 하는 당연한 일이 학생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처음 해외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여행자의 일상생활을 위한 '생활 외국어' 정도는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 나라 말로 쓰인 소설 한 권, 에세이 한 권 읽으며 여행을 준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외국인도 한국에서 ‘생활 국어'를 구사할 정도면 정착해서 살 수 있다.
우리 학생들은 여행자로 또는 외국인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생활’ 국어를 넘어서는 ‘교양 국어', 즉 제 나라 말로 적힌 글 한 편, 책 한 권 제대로 읽고 사유할 수 있는 수준의 문해력과 언어 구사력을 갖추어야 한다. 모국어 사용 수준은 사고와 의식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한국인의 지적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용 수준을 넘어서는 언어사용 경험과 능력이 절실하다. 학생들이 접하는 정보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좋은 글과 책을 교육내용으로 삼아야 한다. 한 편을 읽더라도 소중히 읽고 제대로 읽어 자기 안에 녹여내고 걸러낼 줄 알아야 한다. 적당한 양의 좋은 음식은 살찌지 않게 하면서 건강을 지켜주듯 적은 양이어도 제대로 된 글을 읽다 보면 정서가 건강해지고 지적으로 성장한다. 청소년기 지적 정체성 형성에 이만큼 좋은 것은 없다.
교과서에 소개된 시 한 편, 묵직한 가르침을 이야기에 빗대어 전해주는 고전수필 한 편, 곱게 정성들여 옮겨 적게 한다. 베껴 쓰기는 글을 천천히, 진지하게 대하게 해 주고 제대로 옮겨 적으려면 큰 수고를 들여야 한다. 긴 글 읽기가 버거운 학생들은 이 활동을 통해 나름 성취감을 얻는다. 흥미위주의 독서에 치중한 학생들은 ‘작은책’을 만들어 매시간 읽은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며 제대로 읽도록 한다. 책을 다 읽고 ‘작은책’이 완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책의 내용을 학생의 언어로 재생산하여 한 편의 글로 작성하게 한다. 긴 글이 일목요연하게 파악되는 경험을 한다. 성장하려는 사람만이 책을 찾는다고 한다면, 책을 찾아야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면 분명 아이들은 성장했다.
‘독서력’이라는 말이 있다. 책읽기가 능력이 되려면 독서를 꾸준히 하며 독서로 성장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정규 수업시간으로 들어온다. 독서를 통한 성장 경험을 교육하는 일은 분명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힘겹게 달려온 선생님들의 실천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이들은 ‘교양 있는 생활인’으로, ‘책 읽는 인간’으로, ‘호모 부커스’로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