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장

금강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효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임석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를 온라인판을 통해 연재합니다. ☞본보 2017년 8월 9일자 10면 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세대로, 임석원의 에세이는 그 시대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해 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곁에서 묵묵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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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장

어떤 일이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하게 잘 진행되기란 쉽지 않고 흔하지 않다. 싱가포르 공사도 그랬다. 28층짜리 쌍둥이 건물 호텔 마감공사 중 인테리어 공사에 소요되는 목재를 독일산 오크(Oak)로 결정, 수입하고 있었다. 공무부에서 발주하고 제대로 엑스퍼다이팅(Expediting, 협의 촉진) 하지 않아 문제가 된 경우였다. 인테리어 자재 도면을 확정하고 그것에 의거해 제작해야 하는 자재이다 보니 공무부에서 업체 선정을 했다. 공무부 외주팀에서 부소장까지 결재를 받고 나서 나에게 발주 품의서를 갖고 왔다. 부소장이 결재를 하면서 “수입자재이니 자재팀의 합의를 받고 소장 결재를 올려라”라고 했다. 신용장을 개설, 수입, 통관, 운송하는 업무는 내가 하고 있었으니 나에게 온 것이다. 나는 제작 자재라 하더라도 공무부에서 업체를 선정하지 말고 자재팀에 업체 선정을 요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무부에서 작성한 품의서를 들고 부소장인 관리담당 이 이사님의 방을 노크했다. 이 이사님은 본사 자재담당 임원을 지내셨던 분이다. 나는 서류를 이 이사님이 보시도록 책상에 펼쳐놓고 말씀을 드렸다.

“부소장님, 독일산 오크 자재 발주 건 보셨습니까?”

“그래, 내가 임 대리 보여주고 자재팀 합의를 받으라고 했는데, 왜?”

“아니, 이사님은 본사 자재 담당 임원을 하셨던 분이 어찌 수입자재 발주를 공무부에서 하게 합니까? 이건 저희 자재팀에서 해야 될 일입니다.”

“뭐야? 이 자식이 아주 당돌한 놈 아냐? 여기는 현장이야. 본사가 아니야. 본사 업무분장은 본사 업무분장이고, 여기 현장에서는 현장소장과 부소장인 내가 판단해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데를 정해서 시키는 거야. 제작 자재를 어떻게 자재팀에서 해?”

“아니, 설계팀에서 도면을 그려서 저희 팀에 보내주면 자재팀이 왜 못합니까?”

“시간이 없잖아. 설계팀은 공무부에 같이 있잖아. 설계팀에서 도면 뽑아 바로 옆 외주팀에 줘서 검토하고 견적 받고 업체 선정해야지. 언제 서류 만들어 자재팀에 청구하고 왔다 갔다 해?”

“….”

“건방진 놈.”

“알겠습니다. 저는 신용장만 개설해 주겠습니다.”

“신용장 개설해주고 통관만 해.”

부소장은 신용장 열어주고 때가 돼 자재 들어올 때 통관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 공무부 너희들이 해봐라. 수입 업무를 아무나 해도 되는 건 줄 아는 모양인데. 그렇게 아무나 할 수 있다면 내가 여기 왜 있냐?’ 나는 억하심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입이란 지리적으로 분리된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들여오는 일이다. 특히 제작품인 경우 제품이 사양에 맞게 제작이 되는지 한 품목 한 품목 확인해야 하고 선적 일정에 맞춰 제작이 완료될 수 있도록 꾸준히 업체와 통신해야 한다. 품목과 수량이 많을 경우에는 공사부로부터 품목별 소요 계획, 즉 품목별로 월별 소요 수량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생산업체에 품목별로 월별 선적 수량을 보내야 한다. 최종 선적이 완료될 때까지 꾸준히 업체와 통신을 유지해 공사가 진행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자재가 적기에 들어오도록 생산과 선적을 독려해 공사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사양이나 품목과 수량, 소요 시기가 조금이라도 변경되면 그때마다 생산업체와 최종 소요자인 공사부 사이에 착오가 없도록 중간 역할을 잘 해야 한다. 이러한 업무를 엑스퍼다이팅(Expediting, 협의 촉진)이라고 하는데 플랜트 공사, 특히 EPC(Engineering 설계, Procurement 구매, Construction 시공) 공사 시 구매(Procurement) 업무 중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공무부에서 누가 이 일을 한단 말인가? 어쨌든 나는 독일산 오크 목재 수입과 관련해 신용장만 개설하고 자재가 들어오는 대로 통관은 통관 회사에서 잘 하고 있었기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토요일 현장 공정회의 시간에 난리가 났다. 독일에서 수입하는 오크 목재 때문이었다. 회의에는 소장, 부소장과 공무, 공사, 기계, 전기, 관리부의 부장, 그리고 공사부 소속 4개 공구장과 자재팀장이 참석했다. 부소장인 이 이사님은 관리부와 자재팀을 책임 맡고 있었다. 관리부 현지 여직원 샐리가 내게 와서 이 이사님이 나를 찾는데 엄청 화가 나 있다고 했다. 나는 독일산 오크 자재가 제대로 안 들어와 공사를 못하겠다는 불평을 공사부에서 몇 번이나 들었다. 독일 생산업체 입장에서는 품목별로 한 가지씩 전체 수량을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기에 품목별로 전체 수량을 생산, 선적해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공사부 입장에서는 호텔 객실별로 필요한 품목들을 선적해 들여와 객실 하나하나씩 완료하고 손상이 되지 않도록 문을 잠가야 한다. 공사 인부가 2000여 명이나 들락거리니 비싼 품목이 많이 들어있는 별 다섯 개의 고급 호텔 1000여 개 객실을 다 열어놓고 공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 공무부에서 발주만 했지 생산업체로 하여금 공사부의 소요 시기에 맞게 각 품목을 소량씩 생산, 선적토록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공사부장과 공무부장, 자재팀장 셋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게 뻔했다. 자재팀 염 차장은 ‘그건 공무부에서 발주한 자재다. 자재팀에서는 신용장만 열어주고 통관만 하기로 했다’면서 당연히 ‘자재팀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대리인 내가 가서 뭐라고 말을 한단 말인가? 불같은 성격의 이 이사님에게 가 봤자 큰소리로 혼날 뿐이었다. 나는 샐리에게 “나 사무실에 없다”고 하라고 하고 나와 버렸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부소장이 나를 불렀다. ‘어이쿠, 올게 왔구나’ 하고 부소장 방을 노크했다.

“이사님, 부르셨습니까?”

“어, 임 대리, 어서 와. 독일 오크 자재 얘기 들었나?”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지나면서 어느 정도 화가 풀린 이 이사님은 평정을 되찾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제대로 잘 안 들어온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래? 구체적인 건 공무부 외주팀 홍 차장한테 가서 얘기 듣고 준비되는 대로 바로 독일 출장을 가도록 해. 공무에서 뽑아주는 품목은 공사 진행을 위해 긴급하게 들여와야 되니까 항공으로 싣도록 해. 두세 컨테이너 물량쯤 뽑으라고 했는데 생산자인 필립 홀즈만(Philipp Holzmann) 돈으로 싣도록 잘 협상해봐. 정 안 되겠으면 우리 돈으로라도 실어 보내. 항공으로 선적해서 출발하는 것 보고 돌아와.”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나는 이건 공무부 일이니 공무부 담당자가 가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해외 출장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수개월 동안 이 일을 하던 김 과장이 있지 않은가? 그가 가야 생산업체와 대화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장 공사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는 데다 무서운 이 이사님의 얼굴, 화를 참으며 굳어 있는 얼굴을 보고서 그렇게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공무부 외주팀 홍 차장에게 갔더니 긴급 선적해야 할 12가지 품목과 수량 리스트를 뽑아 놓았다. 계산해 보니 20피트 컨테이너 3대 분량이었다. 설계팀 사 대리와 함께 내일이든 모레든 비행기 잡히는 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임무는 긴급 선적이었고 설계팀 사 대리의 임무는 몇 가지 도면 확정이 안 된 품목의 도면을 독일 생산자와 대면 협의해 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면을 현장으로 보내 바로 발주처와 협의해 확정, 승인을 받고 다시 생산자에게 전달해 생산, 선적하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나는 그날 종일 하던 업무를 마무리하고 저녁에 출장업무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상대 업체 독일 필립 홀즈만에 텔렉스를 보냈다. 나를 소개하고 설계 사 대리와 함께 출장간다고 알렸다. 긴급 선적요청 자재 리스트도 보내면서 해당 자재를 미리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합의서(Memorandum) 초안을 미리 만들었다. 항공운송비용 전액 수출자 필립 홀즈만 부담으로 작성했다. 긴급 선적 품목과 수량 리스트도 만들었다.

다음날 싱가포르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직항편인 싱가포르 항공과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권이 없어 우리는 영국 브리티시 항공편으로 런던을 경유하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자 필립 홀즈만의 수출부장 미스터 코흐(Koch)와 목재가공공장 사장 미스터 슐츠(Schulz)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프랑크푸르트 시내 마인 강변에 위치한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안내했다. 방 두 개를 예약해 뒀다. 우리는 출장비를 아끼려고 비싸지 않은 적당한 호텔에서 둘이 방 하나를 쓰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별 다섯 개짜리 비싼 호텔에서 각자 방 하나씩을 써야 하는, 전혀 우리가 뜻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그 당시 유럽이나 미국에 여행을 가 남자 둘이 한 방에 들어가면 동성애자 호모로 여긴다는 말을 들었기에 우리는 참으로 난처한 입장이 됐다. 설계 사 대리와 나는 일단 그들이 예약한 대로 각자 방에 들어가고 나중에 한 방으로 합치기로 했다. 동남아 태국이나 저개발국가로 출장을 가면 상대 업체에서 호텔비를 내준다는 데 이곳 유럽에서 그런 행운을 바랄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방을 합치지 못하고 열흘 동안 비싼 호텔비를 내고 각자 방을 써야 했다.

다음날 아침 필립 홀즈만의 수출부장 미스터 코흐(Koch)가 호텔로 우리를 픽업(Pick-up)하러 왔다. 먼저 필립 홀즈만의 본사가 있는 프랑크푸르트 사무실에 갔다. 목재가공공장 사장 미스터 슐츠(Schulz)와 생산부장, 그리고 물류팀장이 와 있었다. 독일 파트너 네 사람과 우리 두 사람이 회의를 했다.

그들은 내가 보내준 긴급 선적요청 품목 12가지의 재고와 즉시 생산 가능 여부를 미리 파악해 놓았다. 8가지는 요청 수량 전부를 바로 선적할 수 있고 나머지 4가지는 나의 텔렉스를 받고 원자재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일단 안도했다, 독일은 선진국이고 필립 홀즈만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 세계에서 상위 랭킹에 드는 큰 회사였다. 우리나라는 그 당시 겨우 후진국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었고 우리 회사도 한국에서는 다 아는 대기업이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아직 후진국의 조그만 업체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낸 텔렉스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또 내 영어 실력으로 명실상부한 국제회의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염려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들과 몇 마디 나눠 보자 그들도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는 아니었기에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럼 남은 4가지는 언제 생산하고 언제 선적 준비되느냐고 물었다. 생산부장은 원자재가 들어오면 생산 라인을 바꾸고 각각 하루 내지 이틀이면 –품목에 따라서는 긴급 선적요청 수량뿐 아니라 전체 오더 수량도 전부 한꺼번에- 생산한다고 했다. 생산부장은 회의 중에도 원자재 수배 건으로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들어왔다 했다. 결국 4가지 품목도 원자재 들여오고 생산하는데 1주일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8가지 품목은 컨테이너로 얼마만한 물량인지 물었다. 물류팀장은 항공으로 요청했으니까 20피트 두 컨테이너 정도가 된다고 했다. 항공편은 알아보았는지 물었더니 오늘 오후에 함께 검수하고 내일 수출 포장하면 3일 후쯤 항공편으로 선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후에 준비된 8가지 제품을 먼저 검수하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공장으로 출근해 남은 4가지 품목의 원자재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생산하는 것도 보기로 했다. 설계 사 대리도 공장에서 디자인팀과 생산팀과 함께 확정되지 않은 몇 가지 제품의 도면에 대해 안을 잡기로 했다. 출장 기간 중 우리가 해야 할 일과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적고 최종적으로 항공선적 비용에 대한 합의만이 남았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생산, 선적하는 오크 마감재가 공사 일정에 맞춰 들어오지 않아 우리 공사 진행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우리 현장에는 2000여 명의 일꾼들이 일하고 있는데 하루 임금을 50달러로만 봐도(당시에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루 늦어지면 10만 달러 손실이 난다. 공사부장은 크게 화를 내고 있다. 그는 필립 홀즈만에 손실보상 요구를 하라고 했다. 나는 사태가 그렇게 나쁘게 진행되지 않기 바란다. 그러니 너희들이 우리 현장 상황을 이해하고 이번 항공선적 비용은 호의적으로 너희 회사에서 부담해라. 그리고 앞으로 이 오크 마감재 공사가 제때 못 끝나 호텔 개관 예정일에 준공을 못하게 되면 우리 회사는 지체배상금으로 발주처에 큰 액수의 돈을 배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너희 회사에 손해배상 청구를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이번 항공선적 자재뿐 아니라 남은 자재도 우리가 주는 선적일정에 맞춰 생산하고 제때 선적해 주기 바란다.”

그들은 저희들끼리 독일어로 한참을 얘기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의 말에 동의했다. 나는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야호! 성공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20피트 세 컨테이너를 항공편으로 선적해 보내고 나는 당초 일정보다 하루 먼저 출발했다. 설계 사 대리는 확정되지 않은 제품 도면 안이 나올 때까지 좀 더 도와 달라(영어 통역)고 했지만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도면은 스케치 그림으로 서로 통할 수 있겠기에 영어가 좀 모자라더라도 설계 사 대리 혼자 할 수 있다. 나도 프랑크푸르트에 더 머물며 구경도 하고 싶었지만 어찌 그렇게 하랴? 현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일들이 쌓여 가는데. 현장에 돌아오니 소장과 부소장은 무척 좋아하셨다. 직원들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한 김 소장님은 자재팀장 염 차장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우리 자재팀 직원들도 모두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그런 김 소장님이 토요일 공정회의 시간에 나를 참석하라고 하고 부장, 팀장들 앞에서 20피트 세 컨테이너를 항공으로 선적하고 그 비용을 어떻게 필립 홀즈만이 내도록 했는지 브리핑하라고 하면서 나를 칭찬해 마지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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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석원은...

1956년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한남대를 졸업한 후 1980년 S그룹 S건설에 입사해 23년을 근무하면서 사우디·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8년간 생활했다. 2003년 영국 유통회사 B&Q 구매이사, 2004년 경남 S건설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9년 H그룹 H건설에 입사해 리비아에서 자재·장비 구매업무를, 2011년 E그룹 E건설에 입사해 중국과 동남아 대외구매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전북 J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3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미군부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분당 판교지역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엔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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