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의 마음 속에 응어리진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99주년 3·1절에 즈음해 우리 지역을 비롯한 전국 ‘평화의 소녀상’들이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 작은 꽃이 될 수 있을까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26년이란 긴 시간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전국의 소녀상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염원 속에 2011년 겨울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요. 서울에서 뿌리내린 소녀상은 평화의 줄기를 타고 각지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전에도 닿았지요.
대전시청 맞은편에 자리 잡은 저는 2015년 3·1절, 대전시민의 응원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후 3년이란 시간동안 인권 존중과 평화를 소망하는 대전시민의 마음은 한결 같았습니다. 주변을 오가는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아름드리 꽃을 놓아줬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목도리와 장갑도 전해줬습니다. 그 마음의 밑바탕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역사의 아픔을 공유하는 정서 아닐 런지요. 그 따뜻한 ‘잊지 않음’은 차가웠던 계절을 건너온 마음을 지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수요일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소녀상 곁에 모입니다. 한 주, 두 주, 어느덧 횟수로 천 번 하고도 삼 백여 번이 더해졌습니다. 할머니들과 시민들은 수요집회를 통해 일본의 진실된 사죄를 요구했지만 그 오랜 바람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일본의 적반하장 격 태도로 험난함의 연속입니다.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 과정도 그랬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 조건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며 우리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요.

그러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은 자란다는 생각입니다. 세종과 충남 서산 시민공원, 천안 신부공원, 아산 신정호수 공원, 논산 시민공원, 홍성 홍주성 부근 등 지역사회 곳곳에서 저의 친구들이 탄생하는 것은 그 작은 방증이 아닐까요. 전국의 소녀상은 60여 곳, 해외까지 하면 70여 곳에 제 친구들이 세워져 아픈 역사를 알리고 있습니다. 지역사회를 비롯한 소녀상이 있는 곳곳에서 수요문화제가 열리는 등 시민의 따뜻한 마음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3·1절에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소중한 누군가에게 우리의 의미를 알려준다면 어떨까요.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 작가는 말합니다. “내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왜 3·1 운동을 기념해야 하는지, 그리고 해방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왜 숙제로 남았는지 아셨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평화의 소녀상을 보며 인권이 존중되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부디 우리를 단지 하나의 상(像)이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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