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없는 보기 드문 정의"

 

(지난회에 이어서) 근데 그녀에 대한 소문이 관의 귀에 들어갔다. 관이 이 심문을 하겠다고 나서자 놀라 자빠진 주동자들은 그녀에게 새 옷까지 사 주면서 법정에 가면 반드시 거짓 증언을 하라고 꼬드겼다. 그리고 놀랄 일이 벌어졌다. 당시 마녀재판에 회부되면 대개는 죽도록 고통과 고문을 당하다가 죽어 나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마녀재판과는 다른 판결이 그녀에게 내려졌다. 오히려 마녀로 몰린 그녀는 살고, 가해자들이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H.-J.볼프도 이 재판을 '좀처럼 없는 보기 드문 정의'라고 표명했다. 그녀를 마녀로 몰고 전적으로 야비한 심문을 주도했던 사비네 브라만은 2년형 판결을 선고받았고, 병든 염소주인인 힐데브란트 부부는 1년 판결을, 그들의 아들은 매 15대를 맞는 것으로 판결났다.

법정은 가해팀들에게 법정비와 치료비까지 물게 했고 반대로 크리스티네는 100탈러(Taler:당시의 돈 단위)의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고 볼프는 그가 인용한 자료 출처까지 각주에서 밝혔는데, 1791년 출간된 피셔의 책 292쪽 이란다. 아무튼 독일인들의 꼼꼼하고 정확한 자료 출처 등등을 보면 학문이 발달 할 수밖에 없겠다는 개인적인 생각도 잠시 덧붙여본다.

앞에서도 약간 언급했듯이 중세 마녀사냥재판을 보면 이런 판결은 거의 불가능했다. 잡혀 왔다면 대개는 공식처럼 처참하게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연대를 잘 보자. 1785년이다. 이미 시민의식이 서서히 불붙었던 시기다. 바로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4년 전이니 말이다. 물론 이 사건은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1700년부터 서서히 계몽주의가 도래하면서 마녀사냥이 잘못 되었다고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하나 주목 할 것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 역시 정의감에 불 탄 사람이라고 짐작해 본다. 아무리 계몽주의 도래라도 판사의 의식이 새롭게 도래된 시대정신과 병행하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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