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수 소설가

 

십 수 년 전 이혼하고 두 남매를 키우며 살아온 Y 교수(65)는 지방대학교 두 곳에서 일주일에 하루씩 강의를 하고 소설과 평론을 쓰며 근근이 살았다. ‘근근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강사료가 많지 않다는 것, 소설과 평론을 써서 발표해 봤자 그 역시 큰돈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 대학 보내고, 여기저기서 손짓하는 문학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가게 됐다. 소속단체 및 주변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고, 직책이 주어지다 보니 활동 영역은 더 넓어졌다. 그럴수록 Y 교수의 씀씀이는 늘어났고 경제적으로 더 쪼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 사정을 눈치 챈 필자는 그를 위해 근무하고 있던 신문사의 신문에 고정칼럼을 쓸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하기도 하고, 작품해설 등을 부탁해 원고료 형식으로 건네기도 했다.

어느 날 Y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카드를 막아야 하는데 200만 원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총 600만 원 중 200만 원이 부족하다면서 일단 막고 나서 다시 현금 서비스를 받아 갚겠다고 했다. 3개월 후쯤 Y 교수가 또 전화를 했다. 이전보다 세 배 많은 돈이 급히 필요하다고 했다. 돈 없다고 했다. 사실 그랬다. 그 이후 Y 교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문학모임에 나가니 여러 사람이 Y 교수로부터 돈 청탁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한 여성 작가는 Y 교수가 한밤중에 전화해서 너무 기분이 언짢았다며, 남편한테 문학모임에 나가지 말라는 핀잔까지 들었다고 언성을 높였다.

최근에 Y 교수가 길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고, 지금 입원중이라고 한다. 30 중반의 미혼인 큰 딸과 그의 아들은 파산으로부터 Y 교수를 지켜줄 수 없었고, 퇴원 이후 그의 노후는 노령연금 외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C는 필자의 40년지기 친구다. 그는 조그만 섬유공장에서 20여 년간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근무하고 있다. 보통사람들과 정반대의 생활을 하고 있어 필자는 1년에 두세 번밖에 그를 만나지 못한다. C는 20대 후반, 사업하는 동창에게 인감을 빌려줬다가 그 친구의 수억 원의 빚을 대신 갚으며 30년을 살았고, 그 빚을 다 갚은 5년 전에서야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 수 있었다. 때를 놓쳐 결혼을 못한 그. 몸이 여기 저기 아프기 시작하고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사방팔방 수소문해 봤지만 내일모레면 육십인 데다 집도, 돈도 없는 그를 좋아해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해 5000만 원짜리 전셋방을 얻었고, 주식도 좀 샀다고 자랑하던 C를 최근 만났다. 주 거래처였던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생산물량이 감소해 밤에 공장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는 보증금 500만 원에 30만 원짜리 월세로 집을 옮겼는데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에서 깎고 있다고 했다.

오랜 야간작업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다는 그에게 먼저 있던 전세금은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 치아 상태가 안 좋아 치료하고 임플란트 하는데 1000만 원을 썼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재산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회사는 불안정하고, 몸은 아프고, 피부양 가족이 없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하면 선정될 것이고, 그것이 나라의 도움을 받아 준비할 수 있는 자신의 노후대책이라고 했다.

고령화와 저출산, 노인빈곤 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특히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100세 시대 대비를 위한 다양한 노후대책 및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 대상자 혹은 수혜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중장년층의 노후대비를 위한 장년나침반 생애설계 프로그램이나 전직지원, 경력설계 등 은퇴설계 서비스는 공직자나 대기업 혹은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 퇴직자들에게 해당되는 제도다. 노후설계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재테크에 대한 내용이다. 돈이 없는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폐지를 줍고, 어딘가에선 무료 급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또 어느 한 순간 삶의 중심을 잃고 무너진 후에 병실이나 외딴 방에서 외로움과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100세 시대는 혼자서 걸어가야 할 어둡고 긴 터널일 뿐이다.

황인수
소설가, 시인으로 문예감성문인회장,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제2회 이해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구포역에서>가 2016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저서로 소설집 <사랑은 누구에게도 머물지 않는다> <욕망의 반대말> <사랑했던 기억의 부분삭제>와, 시집 <구포역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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