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끊지 않으면 내 자식 아니다”

▲ 임천군수 이담 유서. 충남역사박물관 소장

17세기 초 담배를 처음 접한 조선인들은 담배를 ‘배고플 땐 부르게 하고, 배부를 땐 꺼지게 하며, 추울 땐 따뜻하게 하고, 더울 땐 서늘하게’하는 신기한 물건으로 여겼다. 기호품이나 생필품과 같이 취급되어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담뱃대를 물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문무자 이옥은 “글 읽기를 오래 해서 목구멍이 탈 때 피우면 달기가 엿과 같고, 대궐에서 임금님을 모시다 퇴궐하자마자 무는 담배에는 오장육부가 향기로우며, 겨울밤 첫닭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 이불 속에서 한 대 피우는 맛은 봄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고 극찬했다. 즉,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조선인은 담배가 주는 정서적 위로에 도취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모든 조선인이 담배에 호의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반신불수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담은 자신이 죽은 후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제사를 못 지내게 하고, 특히 이미 골초가 된 둘째와 셋째는 내 자식도 아니니 절대 술잔을 올리지 못하게 하라는, 자못 결연한 유언을 남겼다.

장자 현윤에게 남기는 유서
모름지기 제사를 지낼 때는 정성을 다해야지 스스로를 속여 비웃음을 사지 말아야 한다. 제사를 지낸 후에 향로에 담뱃불을 붙이거나, 초상을 당해 머리를 풀어헤칠 때 담배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가당치 않다. 나는 반신불수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죽은 후, 자손 중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제사에 참석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내가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내가 알 것이라 생각한다면, 너는 다행히도 담배를 좋아하지 않으니 술 석 잔이나 올리고 음식만 차려서 내 뜻을 따르는 것이 옳다. 현순과 현행은 담배에 중독되어 아무리 끊으라고 해도 끊지 않으니, 내 자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사에 참석하더라도 절대 잔을 올리게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못한다면 신주를 땅에 묻어버리는 것이 낫다. 붓 잡기가 힘들어 이만 쓴다.
애비, 전 군수 이담(李湛, 1652~1716)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물건, 담배. 이 유언으로 두 아들은 담배를 끊었을까? 혈육간의 절연은 없었길 바랄 따름이다.
장을연<충남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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