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길 심심한 아스팔트길에도
낙엽 밀어 올리며 솟아나는 새순들...
새로운 태동 시작되는 감동의 순간
한 걸음 겨울 보내고 또 한 걸음 봄마중

신설 코스 벗어나 사슴골로 발길 옮기면
호수와 뭍이 만나는 호반 비경과 조우
새 길 개척했다는 성취감이 들 때 즈음
관동묘려・송명의 선생 유허비가 시선에

 

어느덧 다가온 봄기운이지만 아직 대청호는 차다. 아리따운 봄을 시샘하는 겨울은 좀처럼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휴지기를 뚫고 새로운 생명은 자신의 머리를 들이 내밀며 살아있음을 곳곳에 선보인다. 겨울은 “아직은 춥다”라며 아들에게 옷을 입혀주는 우리네 어머니의 걱정처럼 새로운 생명에게 새하얀 서리를 입히지만 봄은 “걱정 말라”며 아들에게 내복을 입혀 키우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고집처럼 서리를 녹인다. 겨울과 봄 사이 대청호의 가장자리 살얼음을 훑는 북풍은 한겨울처럼 차갑지도, 봄처럼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설렜다.

대청호오백리길 3구간의 시작은 2구간 종점에서 바로 이어진다. 2구간이 대청호와 계속된 동행이었다면 3구간은 대청호를 두고 잠시 외도하는 구간이다. 대청호를 끼고 걸을 수 있는 구간이 이전 구간보단 상대적으로 적은 게 특징이다. 3구간의 시작인 냉천 종점에선 2구간처럼 대청호 바로 옆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다만 곳곳에 식재된 나무는 대청호를 가리지만 죽음과 새로운 삶이 공존해 낙엽과 새순이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뽐내며 대청호의 병풍이 되길 주저 않는다.

대청호와의 동행이 끝나면 곧바로 한적한 시골길이 나온다. 잘 포장된 도로와 곳곳의 감나무, 그리고 고추밭 등이 대청호와 떨어진 아쉬움을 달랜다. 본격적인 외도의 시작이다. 감나무엔 먹고 남은 까치밥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적적한 겨울의 색채 속 강한 인상을 준다. 비닐하우스의 따다 남은 고추는 생을 다한 듯 말라 비틀어졌지만 청에서 홍으로 고쳐 화장하며 최후를 맞이해 점차 태양의 주기가 길어짐을 알린다. 고추처럼 겨우내 언 배추 역시 점차 녹아 새로운 생명을 위한 거름이 된다. 우리가 빌딩숲에서 바쁘게 하루하루 버티는 사이 자연에선 새로운 태동이 시작되는 감동의 순간이 벌어진다. 매년 반복되는 희애(熙哀)의 순간을 이제껏 육안에 담지 못했다는 노락(怒樂)이 겨울과 봄의 엉킴처럼 감정이 설킨다. 희로애락의 마음속 용솟음침은 한적한 시골길과의 외도를 돌이키는 순간 대청호와의 재회로 마무리된다. 

동영상 

 

시골길과 대청호의 어우러짐은 이 시기의 날씨처럼 서로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각자의 매력이 뿜어져 나오지만 발걸음을 옮기면 매력의 발산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짧다. 왼쪽으론 낮지만 대청호를 가리기엔 충분한 산이 나타난다. 사슴골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과거엔 3구간이 이곳으로 이어졌지만 최근 수정돼 지금은 발길이 뜸해진 곳이다. 사슴골이란 지명을 볼 때 사슴이 많이 나오는 골짜기란 뜻으로 보인다. 실제 곳곳에서 사슴의 발자국을 찾아볼 수 있고 힘들어 모두가 숨죽인 순간 사슴의 울음소리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사슴골은 과거 대청호오백리길 구간으로 사용됐던 만큼 사람이 걷기에 불편함이 없지만 발길이 뜸해서인지 나무와 수풀은 자연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슴골 중심으로 갈수록 지명처럼 사슴만이 다닐 정도로 점점 우거지고 나무는 하늘의 푸름을 가리는 장벽처럼 태양의 손길마저 거부한다. 이곳에서 만큼은 겨울과 봄이 아닌 겨울만이 있는 세상이다. 

물이 모인 작은 웅덩이는 여전히 얼음을 입고 부끄러워 아버지 뒤에 숨은 어린아이마냥 새순은 보일락 말락 고개만 내민다. 겨울을 벗어나고자 발걸음에 채찍질을 가하지만 점점 가팔라지는 대청호를 가리는 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러나 점차 높아지는 고도 덕분에 가려졌던 대청호는 슬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탁 트인 시야에 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강타하지만 곧 오른 산 정상에선 완전히 모습을 보인 대청호의 거대함에 안면의 아픔은 금세 잊게 된다. 대청호의 절경과 사슴골로 인한 사방의 고요함은 감탄의 소리마저 이곳에선 실례가 된다. 그저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바라보는 게 최선일 정도로 모두가 숨죽인다. 그리고 그 순간 사슴 무리의 외침이 고요의 적막을 깬다. 

기분 좋은 잔잔함을 깨고 대청호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기 위해 사슴도 다니기 힘든 길을 찾아 나선다. 사슴골에서 더욱 위로 오르지 않고 내리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길이 나지 않아 제법 위험하지만 사슴만이 다니며 봤을 절경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아직 녹지 않은 길에 낙엽이 살포시 앉아 평소보다 더욱 미끄럽지만 곳곳에 보이는 사슴의 흔적은 절경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인다. 한두 개만 보였던 사슴발자국은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사슴골 중심에서 대청호까지 한달음에 내려오면 높은 곳과는 달리 산이 사방으로 뻗쳐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하다. 잔잔하고 볕 좋은 곳엔 사슴 무리가 새벽 일찍 물이라도 마시고 갔는지 어지럽게 흔적을 남겼다. 

백사장이 아닌 적(赤)사장이 사슴이 다니기에 편안하게 붉은 빛을 띠며 대청호 주변을 안는다. 대청호의 주인은 자신인 마냥 사슴의 어지러운 흔적을 시샘하며 같은 발자국을 더욱 깊고 선명하게 남긴다. 대청호 바로 앞에서 가끔씩 불어오는 한 움큼의 바람이 금세 발자국을 지워버리지만 이 또한 어떠하리. 자연의 힘을 누가 이길 수 있으랴. 대청호란 대자연 앞에 숙연해지며 잠시 예정에 없던 휴식을 취한다. 바람에 출렁이는 대청호의 파도는 고요함을 깨는 동시에 고요함과 어울려 하나의 합주를 만들어낸다. 바람과 대청호는 휴식을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평온함으로 이어진다. 높아진 대청호의 수위로 섬이 된 낮은 언덕은 바람 대청호와 삼위일체를 이루며 비경을 제공한다. 이곳에선 사슴도 물만 마시고 가지 않고 대청호가 주는 절경에 정신을 뺏겨 휴식을 마음껏 누볐으리. 

관동묘려

잠시의 휴식을 끝내고 3구간의 마지막을 위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면 곧장 관동묘려가 송명의 선생 유허비가 나온다. 사슴골에서 대청호를 따라 길 아닌 길로 왔기 때문에 관동묘려와 송명의 선생 유허비를 바라보는 시선은 평소와 달라 색다른 느낌을 준다. 1994년 6월 7일 대전시문화재자료 제37호로 지정된 관동묘려는 열부(烈婦)로 정려(旌閭)를 받은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의 어머니 유씨부인이 1452년 82세로 죽자 이곳에서 장례를 지내고 그 옆에 건축한 재실이다. 송명의 선생 유허비와 돌다리로 이어져 나름 작은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이곳에선 3구간의 종점인 마산동과 멀지 않다. 마산동까지 대청호를 끼고 약 2㎞ 이어진 길을 따라 나서면 3구간에서 가장 유명한 더리스가 눈앞에 나타난다. 대청호와 어우러지는 건축을 통해 예쁜 정원 등이 있어 철새와 텃새가 자주 찾는 곳이다. 더리스에서 특별히 주문하지 않아도 정원에 들어갈 수 있다. 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과 오지 않은 봄처럼 이곳 역시 떠나지 않은 철새와 일찍 세상에 나온 텃새간 싸움이 펼쳐진다. 3구간의 마지막에서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기를 기대한다.
 

◆3구간 보고서
3구간은 이전 1·2구간과 비교하면 굉장히 담백한 곳이다. 크게 즐길 콘텐츠가 많지 않지만 나름의 숨겨진 비경을 찾는 재미가 있다. 우선 관동묘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관동묘려에서 바라본 대청호는 제법 좋은 풍경을 제공하지만 즐길 콘텐츠가 거의 없어 관련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관동묘려 부근에 위치한 식당도 대청호 부근에선 굉장히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면 이곳을 들려 대표음식인 민물새우탕을 먹는 것도 괜찮다. 3구간 마지막에 위치한 더리스 역시 상당히 유명한 곳인데다 잘 꾸민 정원에선 카메라를 들고 포토타임을 가지는 게 좋다. 다만 3구간의 대부분이 아스팔트길로 쭉 이어져 있는데 제법 심심할 수 있다. 그러나 아스팔트 양 옆은 논이나 밭, 비닐하우스 등이 있는데 이곳을 주말농장 형식으로 운영하는 법은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슴골에도 밤나무가 제법 있는 만큼 이와 연계한 농촌프로그램 개발이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영상=정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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