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진료센터가 1999년 5월 대전역광장에서 거리노숙인 건강검진과 건강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전충청지회가 주축이 되어 삼성동 벧엘의집 지하에서 청진기 하나 없이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진료 활동을 시작한지도 올해로 19년차를 맞이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당시 막 문을 연 노숙인 쉼터 벧엘의집(현재는 울안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을 위한 무료진료활동으로 시작했지만 우리사회의 왜곡된 의료현실을 알아가면서 경제적 이유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소외계층의 단순 무료진료를 넘어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인 모든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인 건강권 실현을 위한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희망진료센터가 없는 사회, 무료진료라는 이름으로 하는 활동이 없는 사회, 모든 국민이 경제적 부담 없이 아프면 언제든지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희망진료센터의 용도폐기를 위해 한마음으로 달려왔다. 그래서 매년 총회 때마다 우리는 희망진료센터는 빨리 없어져야 하는 기관임을 서로 확인하고 함께 희망진료센터가 할 일이 없어져 해산하는 날을 만들어 보자며 다짐하기도 했다.

이런 우리의 꿈을 담아 희망진료센터 회칙 전문에는 “…우리는 건강하게 살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인식 하에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일들을 해나가려고 한다. 그 작은 실천의 하나로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위한 진료활동과 예방활동, 보건활동 등을 추진할 것이다. 나아가 왜곡된 공공의료체계가 경제논리에서 벗어나 가난한 이들의 실질적인 보호막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는 선언을 담기도 했다. 빨리 없어져야 할 기관이 되고자 했던 우리의 선언은 우리의 활동을 소홀히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와 같은 기관이 할 일이 없는 사회, 우리와 같은 기관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19년째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청진기 하나 없었던 진료실에는 각종 진단기기, 치료기기를 갖추고 있고, 상시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물리치료실과 웬만한 전문의약품을 다 갖추고 있는 약국, 협력병원만도 30군데가 넘고, 진료과도 양방, 한방,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 다양해졌다. 또한 전담실무인력도 간호사를 포함하여 3명이나 되는 웬만한 시골의 보건진료소보다 규모가 되는 기관이 되어 버렸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결과다. 분명 우리는 빨리 없어지기 위해 건강하게 살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하며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왜곡된 공공의료체계가 경제논리에서 벗어나 가난한 이들의 실질적인 보호막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무상의료실현, 공공의료 확대 등 국민의 건강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공공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목소리를 높여왔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활동이 바로 대전 시립병원 설립추진 운동이었다. 시립병원은 공공의료의 핵심적인 기관이다. 그런데 대전은 울산, 광주와 함께 시립의료원이 없는 광역시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공공의료 확충을 강조하더라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기관이 없으면 제대로 된 공공의료를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의료보장성 강화, 의료민영화 반대도 중요하지만 대전은 무엇보다 우선 공공의료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기에 희망진료센터는 모든 역량을 모아 우선 대전 시립병원 설립을 위해 앞장섰던 것이다.

빨리 없어질 기관이 되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더욱 발전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우리의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빨리 없어지고 싶은 기관인 희망진료센터가 진정으로 용도폐기 되기 위해서는 올 한 해도 회칙전문에 선언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힘차게 달려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요, 존재 근거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올 한해도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희망진료센터가 용도폐기 될 수 있는 날을 향해 달려갑시다. 샬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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