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前 대신고 교장

 

역대 최대 규모인 92개 국 292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지구촌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내며 올림픽 정신인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잘 구현한 훌륭한 드라마였다. 우리 선수단은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 등 총 17개 메달을 획득하면서 종합순위 7위를 차지해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줬다. 총 4개의 문화공연으로 구성된 폐회식에서 피부색에 상관없이 선수와 관중이 어우러져 춤추고 노래 부르며 흥겨워 하는 모습은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줬다.

요즈음 ‘다문화(多文化)’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이 말은 ‘여러 나라의 생활양식’이라는 뜻으로 ‘다문화사회’는 한 국가나 지역 속에 다른 인종·민족·계급 등 여러 집단이 지닌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사회를 가리킨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교류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은 여러 유형의 이질적인 문화를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국제문화(國際文化)’라는 이름을 놔두고 ‘다문화’라고 구별해 부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가 없다. ‘다문화’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제3국의 문화가 연상되는 것은 아마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중소기업체 중 많은 곳이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나 조선족을 고용해 공장을 가동한다. 그곳에 종사하는 근로자 가운데 더러는 우리나라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아 학교에 보낸다. 시골에서는 혼기를 놓친 노총각들이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뤄 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고 있는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런데 국제화시대에 선진국 사람들과 달리 이 사람들을 가리켜 ‘다문화가족’이라 부르며 시혜(施惠)하듯이 대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생 시절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루이스 앤 클락 칼리지(Lewis & Clark College)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와 한 학기 동안 함께 공부한 적이 있었다. 명문 사립대인 그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외국대학에서 공부하며 취득한 학점을 인정해 주는 커리큘럼을 운영해 왔다. 강의실에서 만난 루이스 앤 클락 칼리지 학생들은 피부색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하얀 얼굴의 학생들이 처음 만나는 연주황색의 우리들과 검은 빛깔의 동료들을 향해 ‘굿모닝’, ‘하이’ 하면서 미소를 머금고 먼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강의실 밖에서는 백팩을 둘러메고 환한 얼굴에 두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먼저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서로 손을 잡고 캠퍼스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처음에는 함께 수업을 받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기숙사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는 것을 보고는 나의 편협한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호주를 방문했을 때 시드니에 있는 로스빌 칼리지(Roseville College)와 골드 코스트 지역에 위치한 서메셋 스쿨(Somerset school)을 방문하고 그 주변을 관광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가까워진 한국인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며 백호주의(白濠主義)의 영향으로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많지 않느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웃으면서 자기가 호주에 온 지 10년이 지났다고 했다. 처음에는 공부하러 왔다가 살기 좋아 정착하게 됐단다. 그러면서 이곳 사람들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든가 백인들의 우월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생각하면 자신은 동남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신분인데, 자기 자녀들이 학교생활을 하거나 자신과 아내가 취업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단다. 자기가 볼 때 오히려 인종 차별이 심한 곳은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그러면서 지금도 한국에서 취업하고 있는 동남아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같은 민족인 조선족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가이드의 얘기를 들으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했다. 입으로는 글로벌 시대를 말하면서 아직도 머릿속에는 순혈주의적인 사고를 지우지 못하고 유치한 질문을 한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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