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사망사고에도 영장신청 안 이뤄져

아파트 내 횡단보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대전의 한 소방관 부부의 애끓는 청원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아파트 내 횡단보도 사고도 교통사고 중과실에 포함시켜 달라’는 이 부부의 국민청원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청와대가 14일 답변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는 가운데 보행자 안전 우선 사회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행자 보호와 교통안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지난해 10월 16일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내 도로 횡단보도에서 6살 여자 아이가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교통사고로 아이가 숨졌고 보행자 안전이 우선되는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측면에서 특기(特記)할 만 한 사건이었지만 가해차량 운전자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은 신청되지 않았다. 관할 경찰서인 대전 서부경찰서는 구속영장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기본적 구속영장 신청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부서 관계자는 “이 사고는 운전자가 부주의하게 운전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면서도 “요건이 충족 안 돼 구속영장은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르면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해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죽게 하거나 다치게 한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은 또 사안의 엄중함을 감안해 12대 중과실로 횡단보도, 보도침범, 신호위반, 속도위반 사고 등을 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구속 여부’ 등에 관한 법 집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대해지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과거 교통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과실이 큰 경우를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구속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족의 입장을 고려해 가해자에 대한 경찰의 영장 신청은 수사 과정에서 일반화된 기류였다. 그러나 최근 교통사망사고가 나도 구속영장 신청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대전 서부경찰서만 놓고 보더라도 지난해 관할지역에서 발생한 교통사망사고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사례가 몇 건 있었지만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건 단 한 건도 없었다. 대전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유족의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법원에서도(관련 내용에 대해) 불구속 수사 원칙을 천명하는 등 최근 사법문화가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교통사고 사망사고에 대한 법 적용의 관대함은 가해자에 대해 엄격한 법 적용을 바라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평생 극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A 씨 사건의 피해자인 소방관 부부도 마찬가지다. 이 부부는 지난 1월 1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해야 하는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사유지 횡단보도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다시 똑같은 사건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썼다. 절절한 부모의 외침은 청원기간 21만 여 명의 국민 동의를 얻었고 경찰 등 유관기관의 대안협의를 거쳐 14일 청와대 답변을 앞두고 있다. 이들 부부의 청원이 관련법 개정과 더불어 보행자가 우선되는 사회로 가는 초석을 다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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