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지사직을 내려놓았다면 이런 사태까지 벌어지진 않았을 텐데….”

재선 도백으로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중 가장 선두를 달리는 것으로 평가되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6·13 지방선거 D-100일인 지난 5일 그의 추악한 이면이 여비서의 폭로(8개월간 4차례 성폭행 의혹 제기)로 온 세상에 까발려지면서 충남에선 아이돌 스타와 같은 인기를 구가한다며 ‘충남 엑소’라는 별명을 자랑했던 그는 하루아침에 ‘악마’, ‘쓰레기’, ‘괴물’, ‘파렴치범’으로 전락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이 되면서 그는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즉각 제명을 당했고, 아직 당에 남아있는 그의 동지들은 좀처럼 충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며 ‘만약 그때 …했다면’이라는 탄식을 연발하고 있다.

결과론이지만 그가 지난해 말 3선 도전 포기를 선언하면서 도지사직에서 깨끗하게 물러났다면 이번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때늦은 후회가 바로 그것이다.

안 전 지사를 지지해 왔다는 대전의 한 민주당 권리당원은 “안 전 지사가 작년 12월 차기 지방선거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도백직을 마무리하고, ‘공부나 하겠다’며 외국으로 나가 사실상 정치적 은둔에 들어갔다면 여비서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묻혔을 수 있고, 미래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원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나비효과처럼 점점 확산하면서 그토록 청렴한 이미지의 안희정을 한방에 침몰시킬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미투 열풍이 불어닥치지 않았다면 김지은 씨(전 충남도 정무비서)의 폭로가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고, 했더라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수 있다. 친문(친문재인) 그룹에서 ‘대권 플랜’ 운운하고, ‘안희정 개헌안’ 등을 언급하는 안 전 지사 측에게 자중하라는 신호를 몇 차례 준 것으로 아는데, 굽히지 않다가 결국 추한 꼴을 당했다. 정치인이 진퇴를 결정함에 있어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절감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안 전 지사와 관련해선 또 다른 ‘if~’ 도 있다. 만약 그가 지난해 5·9 장미대선 정국에 민주당 경선을 통과해 ‘대통령에 당선됐다면~’이 바로 그것이다. 충남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세계적인 미투 열풍 속에 현직 대통령 신분인 안희정의 과거 성폭행 사실이 폭로됐더라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혼란이 야기됐을 것”이라며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데 이어 불과 1년 새 차기 대통령이 또다시 국민의 탄핵 요구에 직면하는 상황이 전개됐다면 국정추진동력은 완전히 바닥나고, 그야말로 식물정부가 되지 않았겠는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전 지사 지지자들이 부질없는 푸념을 늘어놓는 와중에 그의 일탈과 비행(非行)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13일에는 김 씨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안 전 지사의 싱크탱크) 여직원 외에도 성폭력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와 안 전 지사 성폭력 사건 대책위원회는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앞선 두 사람 외에 다른 제보를 접수했고, 다른 피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추가 피해자가 누구인지, 고소가 임박했는지, 누구와 관련 있는지 등은 말하기 곤란하며 이들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 대하 추측성 이야기를 만들어 내거나 퍼뜨리는 2차 가해 행위를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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