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 정치교육부장

 

#영미1.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 김영미.
2018년 벽두 ‘영미’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을 환호케 하고 웃음 짓게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컬링 대표팀 스킵(주장)인 김은정이 진지한 표정으로 동료인 김영미에게 승리의 주문을 외듯 ‘영미!’ ‘영미!’를 외치며 선전을 거듭해 당당히 은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기 때문이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평창패럴림픽 컬링 경기에서도 ‘영미’는 우리 대표팀에 기를 불어넣은 응원 구호가 됐고, 요즘 초등학교에선 청소를 하면서도 아이들이 바닥을 쓸며 ‘영미’를 외친다고 한다.

#영미2.
시인 최영미.
연말이면 ‘혹시 올해는…’이란 기대감을 갖게 하며 노벨문학상 후보군으로 거론돼 온,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지엄하신 노시인. 그가 ‘괴물’임을 폭로한 건 후배 시인 최영미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열풍’ 속에 최영미 시인은 문단의 권력자인 고은 시인을 ‘En’으로 지칭한 시 ‘괴물’을 통해 그의 추악하고도 저속한 성(性) 관념을 고발하며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성폭력의 실상을 엿보게 했다.

#영미3.
공주시의원 김영미.
그녀는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수현 전 충남지사 예비후보의 내연녀로 지목됐고, 4년 전 특혜 공천(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을 받아 시의회에 입성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박 전 예비후보는 “특혜 공천은 아니다”라면서 “내연녀가 아니라 재혼을 할 여자”라고 해명, 김 의원과 내연을 넘어선, ‘미래를 약속한 특수 관계’에 있음을 인정했다. 박 전 예비후보는 “생활고가 아니라 여자 문제로 인해 이혼을 한 것”이라는 전처의 폭로까지 이어지며 벼랑으로 내몰렸고, 결국 당으로부터 자진 사퇴를 권고받으며 지난 14일 예비후보직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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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영미다. “옛날 이름 같아서 어릴 때 부모님께 개명을 하고 싶다는 애기를 드리곤 했는데 요즘은 괜찮아요.”

‘영미 신드롬’을 일으킨 여자 컬링 대표팀 김영미 선수도 올릭픽 기간 중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개명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역시 이름이 촌스러웠다는 게 이유다. ‘꽃 영(榮)’자에 ‘아름다울 미(美)’ 자를 쓴다는 그녀는 “순우리말의 현대적인 이름으로 개명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생각이 없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요상하게도 2018년 들어 ‘영미’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된다. 흔한 여자 이름 중 하나인 영미가 무술년(戊戌年)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영미1’이 우리에게 기쁨을 줬다면 ‘영미2’는 위계(位階, Hierarchy)와 위계(僞計, Deceit), 독선(獨善)과 위선(僞善)이 뒤엉킨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표출했다. 집권여당의 충남도백을 노리던 정치인과 불륜을 저지르며 그의 발목을 잡은 여성인지, 폭로정치의 희생양인지 아직 속단할 수 없는 ‘영미3’는 안희정의 친구임을 자랑하던 박 전 예비후보의 꿈을 무산시킨 비운(悲運)의 여성이 됐다. 여비서의 성폭행 의혹 폭로로 하루아침에 파렴치범으로 전락한 안 전 충남지사의 몰락에 치명타를 입은 박 전 예비후보의 쓸쓸한 퇴장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하려면 수신제가(修身齊家)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곱씹게 했다.

‘영미야, 잘 지내고 있니…?’
갑자기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어수선한 2018년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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