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자선교회이사장

 

봄을 환영하는 시들을 통해 새해, 새봄, 새 사람, 새 소망을 찾아보고 싶다. 한 해를 시작하는 계절에 원대한 포부와 계획을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시인들은 이 계절에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심경을 노래했는가, 몇 편을 골라 함께 읽으면서 우리들의 정서도 다듬어 차분하게 각성을 정위치시켰으면 좋겠다.

①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②“꽃은 피었다가, 왜 이다지 속절없이 지고 마는가, 봄은 불현 듯이 왔다가 왜 이다지 자취 없이 사라져버리는가, 내 사랑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모두 이렇게 다 떠나고, 끝까지 내 곁에 남아 나를 호젓이 지키고 있는 것은 다만 빈 그림자 뿐이려니, 그림자여, 모든 것이 아쉬웁고 허전하고 쓸쓸한가, 만나는 것마다 왜 마냥 서럽고 애틋한가”(이동순/봄날)

③“새들이 깃털 속의 바람을 풀어내면 먼 바다에서는 배들이 풍랑에 길을 잃고는 하였다. 오전 11시의 봄날이 이렇게 무사히 지나가는 것은 저 작은 새들이 바람을 품으며 날기 때문인 걸. 적막한 개나리 꽃 그늘이 말해줘서 알았다. 이런 때에 나는 상오의 낮달보다도 스스로 민들레인 그 꽃보다도 못하였다. 나를 등지고 앉은 그 풍경에 한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나는 바보 같았다.”(심재휘/봄날)

④“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늙은 소나무 아래서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판다. 벚꽃잎이 날아와 앉고 저녁놀 비친 냇물에서 처녀들, 벌겋게 단 볼을 식히고 있다. 벚꽃 무더기를 비집으며,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뜨고,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파는 삶의 마지막 고샅, 북한산 어귀, 온 산에 풋내 가득한 봄날, 처녀들 웃음소리 가득한 봄날”(신경림/봄날)

⑤“앵두꽃이 피었다 일러라. 살구꽃이 피었다 일러라. 할머니 마루 끝에 나앉아 무연히 앞산을 보신다. 등이 간지러운지 자꾸만 등을 긁으신다. 올해는 철이 일들었나보다 라고 말하는 사이 그 앞산에도 진달래꽃 분홍 불이 붙었다.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죽한 뱃고동이 운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식초병)이 울고 야야 쭈꾸미 배가 들었구나. 할머니 쩝쩝 입맛을 다신다. 빙초산 맛이 입에 들척지근하고 새콤한 것이 달기가 햇뻐꾸기 소리 같다. 아버지 주꾸미 한 뭇을 사오셨다 어머니 고추장 된장을 버물 또 부뚜막의 왱병을 기울이신다. 주꾸미 대가리를 씹을 때마다 톡톡 알이 터지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 아버지 하신 말씀 니 할매는 이 맛을 두고 어찌 갔을거나. 환장한 환장한 봄날이었다. 집집마다 부뚜막에선 왱병이 오도방정을 떨고 앞대 개포가에선 또 나즉한 뱃고동이 울었다.”(송수권/봄날)

⑥“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 잡고, 매화꽃 보러 간 줄 알아라”(김용택/봄날)

⑦“온종일 비는 쟁여논 말씀을 풀고, 나무들의 귀는 물이 오른다. 나무들은 전신이 귀가 되어 채 발음되지 않은 자음의 잔뿌리도 놓치지 않는다. 발가락 사이에서 졸졸거리며 작은 개울은 이파리 끝에서 떨어질 이응을 기다리고 각질들은 세례수를 부풀어 기쁘게 흘러 넘친다. 그리고 나무로부터 한 발 물러나 고막이 터질 듯한 고요함 속에서 작은 거품들이 눈을 트는 것을 본다. 첫 뻐꾸기 젖은 몸을 털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황인숙/봄)

⑧“봄이 혈관(血管)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도르 시내 차가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윤동주/봄)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