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꽃이피는 신화 5편

◆성당 위 사이프러스(Cypress)

언덕위에 바람이 불면 길고 커다란 나무가 줄지어서 일렁거리는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의 잔상을 떠올려본다. 유럽의 상징 같은 그 나무가 사이프러스다. 가우디(Gaudi)가 만든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 성당 위 나무도 사이프러스였다.

영원한 삶을 의미하지만 무덤에 줄지어 심어주는 나무였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사이프러스는 생사의 갈림길에 나타나고 끝내 죽게 된다는 암시의 존재이기도 했다.

신화는 프리기아(Phrygia)에서 시작된다. 아폴론(Apollon)의 연인이었던 꽃미남 키파리소스(Cyparissos)는 사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멋들어지는 뿔에 걸맞게 깊은 눈매는 신의 품격이 느껴질 정도였다. 여느 날과 같이 아침에 사슴을 씻기고 치장했다. 그리고 오후에 아폴론과 사냥을 나갔는데 기분이 좋아 왠지 좋은 성과가 있을 것만 같았다. 멀리 호숫가에 물을 먹는 짐승이 보였고 키파리소스는 아폴론보다 먼저 활 시위를 당겼다. 활은 정확히 날아가 짐승의 숨통을 끊었고 헐떡거릴 틈도 없이 죽고 말았다.

기쁨에 도취돼 한달음에 달려가니 그 짐승은 자신의 사슴이었다. 가슴을 치며 원통해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큰일이었다. 도대체 사슴이 뭐라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 날 수도 없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키파리소스는 연인 아폴론에게 빌었다. 죽여 달라고. 너무 간절한 연인의 기도에 아폴론은 키파리소스를 푸르게 바꿔줬다. 어디서나 멋지게 당당해서 눈에 띄는 나무, 사이프러스가 됐다. 그리고 그 나무는 무덤가에 심겨져 죽은 자들을 배웅했다.

목숨을 버릴만한 애완동물이라. 도대체 잘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신화는 그랬다.

◆장밋빛 손가락, 에오스(Eos)

새벽의 미명을 가져오는 여신은 에오스였다. 에오스 여신에게는 별명이 있었다. 바로 ‘장미빛 손가락’이다. 새벽녘 산 넘어 물속에서 헬리오스(Helios)가 황금마차에 해를 싣고 달려 나오면 에오스 여신이 장미꽃을 들고 나와 세상에 뿌려줬다. 하루하루 신의 사람들은 그 놓인 꽃을 밟으며 새 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시작이었다.

비밀의 상징 장미는 아프로디테(Aphrodite)의 것이었다. 누군가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의 사랑놀이를 우연히 지켜봤다면 에로스(Eros)가 다가와 빨간 장미를 선물했다. 뇌물이었다. 비밀로 해둘 것을 당부한 것이다. 침묵의 신 하르포크라테스(Harpocrate)도 같은 선물을 받았다.

장미의 방에서 한 말은 비밀에 부치는 로마의 풍습은 그렇게 신화에서 시작됐고 가시를 숨긴 치명적 매력의 비밀스러운 장미는 꽃의 여왕이 됐다.

그리스의 새벽은 장밋빛이다. 장밋빛 내 인생, 사뿐히 즈려밟고 걸어가 보자.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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