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춘을 바친 직장인 신문사는 일반 직장에 비해 독특한 문화를 가진 곳이다. 상급자와 하급자 간의 예의와 격식이 참으로 수평적이다. 상사에 대해 어려워서 절절매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입사 초년생 시절에 나이 차이, 직급 차이가 상당한 상사와 맞담배질을 하고 자유롭게 회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회의를 할 때나 업무를 볼 때도 경직된 자세를 보이거나 눈치를 보는 일은 없었다.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에 익숙한 외부인들이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가 분명했다.

기자로 일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기관, 단체의 취재 담당자로 역할을 했다. 특히 기관이라고 불리는 관공서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출입기자라는 이름으로 각 기관의 기관장들과 만나는 일이 빈번했고, 하위직 직원보다는 간부 직원을 상대할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공서의 조직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내가 신문사에서 겪고 있는 조직문화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관공서 특유의 의전문화는 지켜보기가 숨 막힐 정도였고,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어쩌면 그리도 인간관계가 수직적인지 놀라웠다. 적정한 예의를 지키는 수준을 한참 벗어나 때로는 그 문화가 비굴하게 비쳐지기도 했다. 내가 저런 문화 속에 생활하지 않고 있음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특히 수행비서들의 역할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기관장을 위해 모든 사생활을 반납하고, 모든 자아의식까지 포기하는 존재가 수행비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의 하루 일과를 알고, 그들이 하는 일의 범위를 알고 놀라웠다. 내가 저런 일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혼자 여러 번 했다.

공직사회의 의전은 예의를 다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특히 기관장은 자신의 손으로 무엇 하나 할 수 없게 만든다. 차 문을 열고 닫는 사소한 일도 수행비서가 해준다. 신발을 신고 벗을 때 신발을 방향을 돌려놓는 것은 기본이고 옆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냉큼 구두칼을 집어준다. 신용카드를 지갑에서 꺼내 대금을 결제하는 일도 수행비서가 해준다. 땀이 나면 냉큼 손수건을 대령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때 숫자를 누르는 일도 대신 해준다.

이런 과도한 의전문화 때문에 기관장으로 재임하다가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무엇 하나 본인 스스로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 된다.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찾을 줄도 모르고 기사가 없이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기 일쑤인 무능력자로 전락한다. 이러한 사례를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은 것이 한두 건이 아니다. 선출직으로 기관장에 입성한 경우 처음에는 지나친 의전에 어색해하고 불편해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뿌리 깊은 관료주의에 매료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관료주의 문화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맥락은 여전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력 사건 소식을 접하며 공직사회의 관료주의 문화가 머릿속을 맴돈다. 조직 밖 관찰자 입장에서 공직사회의 관료주의 사고, 의전문화는 이번 안희정 사건과 같은 초대형 사고가 터질 수 있는 단초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멀쩡한 사람도 제왕적 권위를 갖게 하고 무소불위의 직권을 휘두를 수 있게 하는 마약 같은 존재가 공직사회의 관료주의와 지나친 의전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마약은 사람을 환각상태에 빠지게 해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으로 만들어주지만 실상 그 사람을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간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접해본 마약이 습관화 되면 점점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45세의 젊은 도지사는 초기에 자신이 접하는 지나친 의전을 경계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려 8년의 세월동안 마약에 빠져들 듯 관료주의 문화가 제공하는 달콤한 의전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결국 해서는 안 될 몹쓸 짓까지 하는 파렴치한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이참에 공직사회를 향해 구시대적 관료주의 사고와 낡은 의전문화를 바꿔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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