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우 공주대 교수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춘추시대의 난세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한 정명의 논리이다. 아버지와 아들조차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판국에 나라와 시민이라고 온전하겠는가? 이와 같이 가정과 사회의 기본적인 관계가 서로 뒤엉켜 개념이 무너진 사회가 되면 온갖 무질서와 부패가 횡행하는 난세를 면할 길이 없다. 난세가 되면 ‘소금이 시고 간장이 어는 것’과 같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속출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과 교수가 개강모임을 갖고 한 학기 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강의와 학업에 매진하자는 덕담으로 인사를 나누어 왔다. 대개의 경우 같이 밥도 먹는다. 식대는 학생들이 추렴해 내기도 하고 교수가 내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2016년 11월 세칭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뒤로 교수와 학생이 함께 하는 자리가 생기고 돈이 필요할 경우가 되면 으레 법에 저촉되는가 여부를 놓고 서로 눈치를 보게 되고 말았다. 대학가의 보기 좋은 풍속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지난해 스승의 날에 있었던 일이다. 매해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이 조금씩 추렴해 도시락과 다과를 마련한 다음 강의실에서 스승의 날 행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교수가 김영란법을 거론하며 행사를 취소하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행사취소를 미안하고 안타까워하는 대표학생에게 그 교수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으니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여러 교수님들의 마음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정성들여 준비한 스승의 날 행사를 못하게 된 점에 대해 학생들이 죄송하다고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수들이 사과해야 할 일이다. 적어도 학교에선 교육이 법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서 하책에 속하는 법의 잣대로 최상의 길인 교육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선생과 학생이 만나는 교육의 장은 경제적 득실이나 정치적 권력 등이 작용하는 모종의 거래관계로 보아서는 안 된다. 김영란법의 기본취지는 부패 방지와 청탁 금지에 있는 것인 만큼 사제관계에 곧이곧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부사군 일체라는 말은 사제간의 관계가 부자간의 관계에 못지않다는 뜻일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노리고 밥을 사 주시는가? 자녀가 부모에게 무엇인가를 노리고 선물을 드리는가? 선생과 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학생과 선생이 서로 식사 대접을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이처럼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일에 부패니 청탁이니 하는 험한 잣대를 들이대어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 해괴한 것이다. 스승의 날 행사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행사를 못하게 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비교육적인 판단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더 심각한 것이다. 더구나 다른 곳도 아니고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에서 이와 같이 비교육적인 사례가 일어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마 대강 위와 같은 취지로 학생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랬던 것 같다.

곧 오월이 되고 스승의날이 올 것이다. 스승의날뿐이 아니다. 사은회도 있고 개강모임 종강모임도 있다. 앞으로는 어떤 기회가 되더라도 학생들이 정성들여 준비한 도시락과 다과를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만약에 김영란법을 들어 책임을 추궁한다면 기꺼이 맞이해 대응해 나갈 생각이다. 순수한 인정으로 교감하는 사제간의 관계를 강의평가 점수나 학점을 노리는 치졸한 관계로 치부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법보다 교육’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나 다를 바 없는 법 따위에 질 수는 없다. 학교는 개념이 지켜지는 사회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겠는가! 교수와 학생이 각자의 본분을 지키고자 노력한다면 두려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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