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신을 알라 하였지만
나는 나를 알 수 없었네

서푼어치 안 되는 자존심 내세우며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며 살았네

자신의 소중함 망각하고
남의 눈 의식하며 안절부절 하였네

얼룩진 삶, 회칠한 인생
빛을 만나자 그대로 드러났네

부족한 나, 더러운 나
나는 나를 알았네, 죄인임을 알았네

자존심 버리고 무릎을 꿇었네

내니 두려워 말라, 안심하라며
십자가 보혈로 나를 대속(代贖)한

예수짜리 자존감이 나를 붙드네

나의 나 된 것, 하나님의 은혜였네
주신 평안 누리며 감사 찬송 부르네

 

24살에 강동(江東) 군사 8000명을 이끌고 유방(劉邦)과 천하를 다투던 초패왕 항우(項羽), 70여 차례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 없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가 한신의 계략에 빠져 사면초가 속에 오강(烏江) 나루터에 도착했다. 부하 정장(亭長)이 배를 준비해 강동으로 건너가 재기를 도모하도록 건의했으나, 항우는 강동의 부형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이유로 배에 오르기를 거절, 애첩 우희를 죽이고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했다. 

31살의 항우는 자존심 때문에 자결을 택한 것이다. 이를 두고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이렇게 노래했다. ‘승패란 병가에서 기약할 수 없다네/ 수치를 안고 부끄러움을 견디는 게 남자인 것을/ 강동 자제에 뛰어난 인재 많다 하니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어찌 되었을까’. 이에 반해 항우를 자결하게 만든 한신(韓信)은 ‘과하지욕(袴下之辱,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는다)’의 교훈을 후세에 남겠다. 젊은 시절 한신은 워낙 가난해 밥을 빌어먹었고, 모친상을 당했으나 장례조차 치를 수 없었다. 그가 고향 회음의 시장 거리를 거닐 때였다. 건달 하나가 시비를 걸었다. “이봐! 넌 늘 칼을 차고 다니지만 겁쟁이 아니냐? 그 칼로 나를 찌를 용기가 없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 잠시 머뭇거리던 한신은 건달의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갔다. 이 일로 인해 시장 사람들은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후일 초나라 왕으로 금의환향한 한신은 건달에게 순찰을 하는 ‘중위’ 벼슬을 내리고 장수들에게 말했다. “그가 망신 줄 때 그를 죽일 힘이 내게 없었겠소? 그때 모욕을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았다면 나는 죄인으로 쫓기는 신세였을 거요. 자존심을 잠시 죽이고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이김으로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소.”

자아존중감의 줄임말인 자존감은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긍정적인 감정이다.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인 자존심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이 더 잘났다고 느끼는 자기애로, 자신감과 열등감 등이 포함된 감정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타인에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에 일희일비한다. 물은 어느 상황에서나 유연하게 흘러간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폭포를 만나면 내려간다. 이것이 물의 자존감이다. 그러나 얼음으로 변한 물은, 바위를 만나면 부딪치고 폭포를 만나면 깨진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부딪치고 깨지면서 상처투성이로 살아가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물처럼 유연하게 어떤 상황에서나 공존하며 살아간다. ‘짜리’는 천원짜리, 만원짜리 등과 같이 가치를 나타내는 접미사로, 예수 뒤에 붙으면 그 가치는 무한대로 늘어난다. 예수의 가치를 우리가 어떻게 감히 측정할 수 있을까마는,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한 예수는 구원이란 이름의 자존감을 우리에게 선물로 줬다.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예수짜리 자존감으로 험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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