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팬주룽의 마지막 전쟁⑤

오소리눈의 명령에 따라 스무 명 남짓한 병사들이 일렬로 늘어서 강을 건넜다.
“으악!” 앞서 건너던 병사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렸다. 강물에 감추어둔 날선 병장기가 선발로 나선 병사들의 발바닥을 뚫고 발등으로 삐져나왔다. 고다리는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것이다.

(역시 예사로운 놈이 아니로구나.)
대망새가 고다리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리자마자 댕글라군의 나무사다리들이 옹골차게 놓여졌다. 고다리가 사다리를 앞서 건너자 나머지 장수와 병사들이 일제히 뒤를 따랐다. 대망새가 멀리서 보니 가마니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고 있는 메주콩 같았다.

양 진영에서 쏘아댄 화살들이 허공에서 부딪쳐 쟁연한 소리를 냈다. 고다리에게로 날아온 화살은 옥돌로 만든 갑옷에 부딪쳐 맥없이 떨어졌다. 고다리가 한번 창을 휘두르면 수십 명이 한꺼번에 나가떨어졌다. 고다리가 대망새군 진영 깊숙이 들어와 우악스런 힘으로 병사들을 무참히 도륙내고 있었다. 댕글라군은 그 여세를 몰아 대망새군을 파도처럼 휩쓸었다. 고다리의 힘은 바위를 던져 바다를 메울 정도였다. 대망새군이 아무리 일급훈련을 받은 정예병이라 해도 그런 고다리를 당할 수는 없었다.

다급해진 대망새가 병사들 사이로 화살을 날려 고다리를 잡으려 해도 워낙에 빨리 움직여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잘못 쏘았다가는 아군이 다친다. 그대로 두면 한 나절도 되지 않아 병사들의 삼분의 일 가량이 고다리에게 요절이 날 것이 빤했다. 속절없이 나가떨어지는 병사들을 구하려 소리기가 고다리의 등 뒤로 올라타 보았지만 머리채를 잡혀 빙빙 하늘구경만 실컷 하고 말았다. 용기 있는 병사 한 명이 고다리의 발등을 단도로 찍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고다리의 창에 목이 꿰었을 것이다.

“후퇴, 후퇴하라!” 대망새가 후퇴명령을 내렸다. 기수가 깃발을 세 번 흔들자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우고 있던 대망새군 병사들이 후퇴를 시작했다. 후퇴를 하는 군사들의 모습은 모래사장의 썰물이 하얀 거품을 남기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일사분란 했다. 고다리는 도망치는 대망새군을 쫓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대망새군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놈이라면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명령을 듣지 않고 대망새군을 쫓아가던 병사들은 기다리고 있던 화살부대원들에게 혼쭐이 났다. 그러나 고다리는 그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 전세를 파악한 대망새가 때마침 후퇴명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수백 명의 군사가 허무하게 죽었을 것이다. 후퇴한 대망새군은 버섯지붕 앞 들판에 황급히 진을 치고 장수회의에 들어갔다. 적의 동태를 감시할 척후병을 남기고 진영의 앞으로 화살부대원들을 전진 배치했다. “고다리가 저 정도일 줄을 몰랐네, 고다리를 잡지 못하면 아군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고 사기 또한 떨어지고 말 것이네.”
매득의 말에 재기와 다른 장수들이 동의했다. 그러나 모두들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두서없이 웅얼거리기만 했다. 이 때 배라기가 신경질적으로 발을 쿵쿵거리며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제가 한번 나서보겠습니다.”

모두의 눈이 배라기에게로 향했다. 배라기의 모습에서 소낵가(家)의 굳센 기상이 느껴졌다. 그러나 대망새가 허락할 리 없었다. “소리기도 고다리를 당할 수가 없었다. 너의 기개는 알겠다만 좀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배라기가 아무리 노기를 부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제가 나서는 수밖에…….”

“어림없는 일일세. 자네가 어떻게 그 야차 같은 놈을 당하겠나. 더구나 자네가 당한다면 우리의 미래도, 팬주룽의 미래도 없네.”
매득이 펄쩍뛰며 말렸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던 대망새가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곳을 포기하고 강 너머로 진영을 치시지요. 강폭이 넓으니 쉽게 넘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시간을 벌자는 말이군. 좋은 생각일세. 그렇다면 서둘러야지.”
뾰족한 수가 없었던 대망새는 천금보다 중요한 버섯지붕을 포기하고 강을 건너 진을 치기로 했다. 병사들의 왁자지껄 한 소리가 들판에 무성히 자라는 잡초들을 성가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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