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대전글꽃초 교사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어느 덧 한 달이 지났다. 새 학기 교실 환경과 소소한 학급경영 일거리, 새로 맡은 업무 파악에 분주한 3월을 보내며, 이제야 고개를 들어 활짝 핀 봄꽃들을 보며 새삼스럽게 놀란다. 매해 돌아오는 봄이고 매해 마주하는 봄꽃들이건만 어김없이 탄성을 지른다. “봄이란 설사 눈 녹은 진창물에 발이 빠졌다 하더라도 휘파람을 불고 싶은 때이다.” 봄의 설렘을 그대로 표현한 ‘더그 라슨’의 말처럼 이 사랑스런 봄 앞에 잠시 새 학기의 분주함과 부담감을 내려놓으려 한다.

나에게 ‘내려놓음’의 시간은 내 인생의 평온하고 아름다운 시절, 3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추억하는 시간이다. 그곳에서의 3년은 교사인 나에게 배움의 시간이었고, 변화의 시작이 된 시간이었다. 특히,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를 바라보는 내 마음가짐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아침 등굣길, 선생님들은 밝은 미소와 하이파이브로 학생들을 맞이한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교장선생님도 한 명 한 명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 주변의 휴지 조각을 얼른 줍기도 하시고, 다정하게 신발 끈을 묶어주기도 하신다. 참 생각만 해도 흐뭇한 캐나다 학교의 아침 풍경이다. 교사의 권위…, 교사가 권위 있는 척 스스로 센 척 하지 않아도 우린 모두 그들을 존경했다. 학부모 면담을 할 때도 그들은 변함없이 친절했고, 다정했고, 영어가 서툰 나를 배려했고, 기다려줬다.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적잖은 문화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살아왔고 마음속 깊이 어려서부터 배웠던 유교적인 마인드가 있어서인지 스승이란 존재를 부모와 같은 또는 그 위의 높은 존재로 알고 있었다. 내가 교사가 되어 첫 학부모를 대할 때도 난 그들이 나를 그렇게 여겨 주기를 바랐었던 것 같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등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교사의 권위’를 찾으며, 현 교육현장의 문제를 한탄하는 것에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는 어떤 위치에 서서 그 관계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이다.
철없는 사람들의 말처럼 누가 ‘갑’도 ‘을’도 아닌 것이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인 것이다.

“남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위엄과 무력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자는 항상 사람들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너그러움을 강조한 세종대왕의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과 더불어 ‘권위 내려놓음’으로 우린 교권 회복을 꿈꿔야 한다.

남은 학부모 상담도, 학부모들과 똑같이 부모가 돼 그분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로 시작하기로 한다. 긍정과 유쾌함으로 ‘권위 내려놓음’을 먼저 시작하고, 아이에 대해 조언과 충고를 해주고 싶어도 다음에 하기로 한다.

오늘도 꿈꾼다. ‘권위적인 교사’가 아닌 ‘권위 내려놓음’으로 학부모와 소통하고 공감하며 행복한 어울림으로 ‘권위 있는 교사’가 되길….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