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연합회 폐지청구 7만 명 서명 받아…한국당 의원들 몰표로 휴지조각 신세 전락

충남도가 도민인권조례 폐지를 재의결한 의회에 맞서 최후 보루인 ‘대법원 제소’를 결정한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인권도정의 기반을 구축한 안희정 전 지사는 물론 남궁영 지사권한대행조차 틈날 때마다 “인권의 가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항변해온 터다. 반면 의회는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옹호·조장하니 없애는 게 좋겠다는 지역 일부 기독교단체의 열망을 그대로 받아든 채 지방선거의 계절을 맞았다. 표를 먹고사는 선출직 도의원 입장에서 인권조례 폐지안 발의와 가결 그리고 이를 확정짓는 재의결 강행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인권조례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점화됐다. 충남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해 4월 6일 도에 인권조례 폐지청구를 내고 5월부터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청구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종교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서명작업은 조직적이었다. 조례개폐청구 절차에 따라 조례 제정이나 폐지를 청구하려면 도내 19세 이상 주민총수 170만 명 중 100분의 1(1만 7032명)의 연서가 필요한데 무려 4배가 넘는 7만 7785명의 서명을 받아낸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인권조례 존폐갈등은 도 집행부와 의회로 옮겨갔다. 지난해 11월 제300회 정례회 2차 본회의에서 김종필 의원(자유한국당·서산2)은 “충남지역 에이즈환자는 349명으로 매년 40여 명씩 늘고 있고 이중 20대가 10여 명에 달한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을 마련해야 할 도가 오히려 성소수자를 옹호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이에 대해 안 전 지사는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인간의 권리가 성적지향성으로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동성애가 에이즈를 일으킨다는 주장은 팩트체크(fact check) 해볼 필요가 있다”며 반박했지만 올 1월 한국당 의원들은 끝내 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발의했다.

이어 소관상임위원회인 행정자치위는 같은달 30일 한차례 심사보류 끝에 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원안가결해 본회의로 넘겼고 2월 2일 재석의원 37명 중 25명 찬성, 11명 반대, 1명 기권으로 통과시켰다. 도는 26일 인권조례 폐지 결정을 내린 의회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재의(再議)를 요구했으나 의회는 한 달여 지난 이달 3일 제303회 임시회 1차본회의를 열고 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재석의원 26명, 찬성 26명으로 재의결하며 폐지를 확정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청소년과 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족 등 인권취약계층을 포함한 210만 도민들의 인권을 보호·증진하고자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이 힘을 모아 만든 인권조례는 불과 5년 11개월 만에 당명만 바뀐 자유한국당의 당론과 소속 의원들의 몰표세례를 받으며 휴지조각에 불과한 신세로 전락했다.

내포=문승현 기자 bear@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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