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사회부장

 

수필가 이양하는 1948년 신록(新綠)을 예찬하는 글을 자신의 수필집을 통해 발표했다. 자연의 아름다움, 특히 봄의 신록이 주는 경이로움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통찰을 제안했다. 그로부터 70년 뒤인 2018년의 봄을 살아가는 우리네는 그러나 더 이상 신록을 예찬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왔지만 미세먼지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돼 버렸다. 뭘 하려 해도 미세먼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다. 1950년대 영국 런던의 스모그(smog)는 역사책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한 때의 사건으로 인식됐지만 이제 그 스모그를 현실에서 마주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점점 커져만 간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그냥 알갱이가 작은 먼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물질이라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가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미세먼지는 황사와 함께 봄철 불청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미세먼지의 유해성 정보가 확산하면서 이제는 봄만 되면 마스크에, 공기청정기에 난리법석을 떨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숨 쉬는 게 고통스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세먼지의 공습은 더욱 더 강력해지고 있다.

황사 마스크는 봄철 야외활동의 필수품이 됐다. 일반 마스크로는 안 된다고 하니 하나에 2000원 정도하는 황사 마스크를 착용한다. 물론 1회용이다. 돈이 아까워 빨아 쓰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한 번 빨면 무용지물이라고 하니 돈 없는 사람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요즘 가정에선 공기청정기도 필수 가전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애라도 있는 집이라면 눈 한 번 질끈 감고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온통 관심이 미세먼지에 가 있으니 오프라인 가전매장에서 에어컨을 뒤로 하고 공기청정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는 미세먼지의 공습은 서서히 이렇게 우리의 생활상을 바꿔놓고 있다.

2년 전 이맘 때, 정부에서 한 가지 ‘웃픈’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고등어가 가정 내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몰린 거다. 중국에서 한 때 양꼬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조사결과니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어쩌다 고등어 한 마리 구울 때도 미세먼지 걱정을 하게 됐나’ 하는 웃기면서 슬픈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2015년 대전에선 의미 있는 변화의 모습이 엿보였다. 대전시가 ‘차 없는 거리’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거다. 옛 충남도청사부터 대전역까지 이어지는 중앙로의 교통을 통제하고 어쩌다 토요일에 한 번씩 축제의 거리를 만드는 참신한 내용이었다. 충남도청이 빠져나간 자리, 원도심의 공동화를 조금이나마 막아보자는 취지와 함께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의 포석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시의 야심찬 이 프로젝트는 단 몇 차례 시행된 뒤 슬그머니 사라졌다. 중앙로에 차량 진입을 막으니 주변 도로의 교통체증이 심화되고 그래서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불편을 감수하지 못한 대가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큰 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동의 편의를 위한 자동차는 매연을 내뿜고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역시 미세먼지의 원인물질들을 쉴 새 없이 배출한다. 제조업 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 편리를 선택한 대가는 반드시 찾아온다.

지금의 미세먼지 공포는 시작일 뿐이다. 호흡기질환자가 많아지면서 폐암 등에 의한 사망자는 더 많아질 것이고 볕 좋은 날 야외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연중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다양한 기후변화와 맞물려 온 나라를 뒤덮을 돔을 만들고 에너지로 작동하는 인공기후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숨 쉬는 게 고통인 날이 오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신록을 예찬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미를 회복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 탓만 할 게 아니라 이 나라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수준의 대책은 안 된다. 제대로 진단하고 맞춤형으로 처방해야 한다. 최소한 미세먼지가 무서워 마스크를 쓴 채 매연 나오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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