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팬주룽의 마지막 전쟁 ⑦

고다리를 정리한 대망새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과연 천생연분 미리은의 내조라고 할 수 있었다. 대망새는 고다리와의 결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사람을 덜 죽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리기를 비롯한 대망새의 측근들은 고다리와의 결투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승산이 없을뿐더러 대망새를 잃으면 잔인한 고다리에게 짓밟혀 모든 희망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망새가 고집을 꺾지 앉자 측근들은 수많은 병사들을 움직였다. 그럼으로 전군의 병사들이 읍소하며 엎드려 대망새의 결투를 막아내려 했다. 참으로 처연한 광경이었다. 병사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목숨을 바쳐 고다리에게 대항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대망새의 결심은 신의 계시를 받은 성직자처럼 의연해질 뿐이었다.

날이 밝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고다리는 어제와 같은 갑옷을 입고 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팔 척이 넘는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의 소유자인 고다리는 마치 사천왕(四天王) 중 지국천왕(持國天王) 같았다. 어제를 생각하면 고다리가 무서워 오들오들 떨어야할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태도가 당당하다. 목숨을 바쳐 고다리에게 대항하겠다던 병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다리에게 뛰어나가려는 병사들을 대망새가 한사코 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병사가 고다리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바르굉이었다. 바르굉은 대망새를 대신하여 죽을 각오를 한 것이다. 그래야만 고다리와의 결투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자 카낭과 올바도 바르굉을 뒤따르려 했다. 배라기와 드륵의 전사들도 슬금슬금 앞으로 전진을 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모든 병사들이 고다리에게 개죽음을 당할 상황이었다. 이 때 매득이 불호령을 쳤다. “이게 무슨 짓들이냐. 군대에서는 명령이 목숨보다 중요하다. 모두들 자중하지 못할까!”

매득의 호통에 병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가슴을 잡아 뜯었다. 너무나 참혹하고 암담한 마음에서 끓어오른 사기였다. 고다리에게 죽임을 당하는 바르굉의 모습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다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 전쟁을 벌인다면 아무리 숫자가 열세라도 반드시 이겼을 것이다. 수백 명을 상대해 능히 제압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장수, 그가 바로 고다리였다. 고다리에게 달려 나간 바르굉은 이미 처참히 찢겨 죽고 말았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바르굉의 의로운 죽음은 이후 오랫동안 팬주룽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된다. “……”

올래드르에 대단한 이변이 일어났다. 댕글라진영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더니 무리가 무리를 이루어 대망새군 진영으로 달려오고 있다. 대망새의 지시를 받은 사마귀가 궁둥백에게 전해 올래의 부족민들이 무조건 투항을 해온 것이다. 그러자 다른 부족 사람들도 덩달아 뛰었다. 도망치는 사람들의 등 뒤로 듬성듬성 화살이 쏟아졌다.

궁수의 삼분의 일 가량이 올래에 묶여 있고 남아있는 궁수 대부분이 타 부족출신들이라 매옴한 화살을 날리지 않은 것이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대망새는 화살부대에게 엄호용 화살을 날리라고 명령했다. 고다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얼떨떨했으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느릿느릿 대망새군 진영으로 걸어갔다. 댕글라군에 남아있는 군사라곤 댕글라부족 사람들 몇 백 명뿐이었다. 비죽과 오소리눈, 푸른돌이 고다리의 옆에서고 수적으로 턱없이 열세인 댕글라군이 그 뒤를 따랐다.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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