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여신인 그리스로마신화의 아프로디테. ‘거품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실제 아프로디테는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시켰고 그의 성기는 바다에 떨어져 거품이 일었다. 거품에서 태어난 게 바로 아프로디테다. 그리스어로 거품을 뜻하는 ‘Aphros’가 아프로디테의 어원이다. Aphros는 아프로디테뿐만 아니라 4월을 뜻하는 ‘April’로도 파생됐다. 즉 아프로디테는 4월과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만 봐도 모든 남성이 한 눈에 반한다고 했던 아프로디테는 12개월 중 4월을 관장한다. 그녀가 관장하는 4월은 1년 중 가장 아름답다. 대청호에서의 4월 역시 아프로디테처럼 아름다웠다.

백제 패망의 시발점이 된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의 백골산에서 느꼈던 감정을 전환하고자,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4월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자 금강로하스대청공원을 방문했다. 로하스(LOHAS)는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약자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뜻한다. 개인의 육체·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추구하자는 뜻이다. 로하스공원은 대청댐과 멀지 않고 드넓은 잔디광장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으로 4월 한창 꽃이 폈을 때의 대청호를 눈앞에 둔 금강은 그저 아름다움 그 자체, 즉 아프로디테 같다.

로하스공원은 넓은 잔디광장에서 시작한다. 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다. 흐드러지게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 잎은 가녀린 여인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흔들린다. 소풍이라도 나온 어린 아이들은 버드나무를 중심으로 한창 뛰어놀며 4월의 어느 날 금강을 즐긴다. 넓은 공터 한쪽을 뛰노는 어린 아이와 놀고 싶은지 그 모습을 한창 살피던 주인과 산책을 나온 강아지는 이제껏 키워준 은혜를 무시하며 주인을 뒤로하고 어린 아이에게 새 주인으로 모실 것처럼 열심히 재롱을 피워댄다. 오랜만에 집을 나와 뛰놀고 싶어 하는 강아지 주인은 강아지의 작은 일탈을 오늘만큼은 묵인하며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가져온 대청호의 향기를 느낀다.

잔디광장의 끝자락에 위치한 암석식물원은 이름처럼 190톤의 바위를 재활용해 만든 고인돌과 산 모양의 조형물, 암석과 함께 자생하는 식물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로하스공원에서 가장 쉽게 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이맘 때 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다. 아무렇게나 억세게 피어난 민들레도 아름답지만 누군가의 손길로 보살핌을 받은 민들레는 더욱 진한 노랑을 띠며 은은하고 소박한 멋을 뽐낸다. 한창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해 아름다움이 절정을 향하는 철쭉의 분홍은 꿀벌을 유혹하고자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색으로 진한 화장을 마쳤다. 다른 꽃들도 4월을 관장하는 신을 닮고 싶어서인지 자신이 가진 모든 아름다움을 끌어와 이곳의 방문객을 반긴다.

 

암석식물원을 나와 다시 잔디광장으로 쪽으로 향하면 로하스 해피로드가 시작된다. 대청호오백리길의 가장 마지막인 21구간에서도 제일 마지막 곳이다. 금강을 오른쪽에 끼고 왼쪽엔 복숭아나무가 산뜻한 출발을 돕는다. 벚꽃은 다 졌지만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복사꽃 덕분에 유난히 짧은 봄이 아직 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복숭아나무에 복숭아가 열리지 않았을까 눈치 없는 까치는 나무 위와 아래를 거닐며 주린 배를 채우느라 바쁘다. 반대편 금강에선 봄맞이 꽃단장을 하는 텃새 무리가 시선을 사로잡고 아직 산책을 시작하지도 못한 방문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조금이라도 더 봄을 느끼겠다는 핑계를 대며 출발을 최대한 늦춘다. 버드나무를 흔들었던 그 바람이 금강 물줄기와 텃새 무리를 쭉 하고 훑는다. 바람 한 점 없던 금강을 즐기던 텃새들은 놀라서인지 이내 자리를 뜬다. 건너편 까치는 텃새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라 자리를 떠나야 하는지 눈치를 살핀다. 그러나 강변에 찾아온 짧은 봄을 느끼고자 금세 자세를 고쳐 잡고 복사꽃 아래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갖고 논다.

복사꽃밭을 지나면 벚나무에 아직 지지 않은 분홍의 벚꽃과 일주일이란 삶을 산화하고 간 흔적의 푸른 잎이 조화를 이룬다. 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지만 아직 남은 봄을 충분히 느끼고자 해피로드를 걷기 시작한다. 따스한 햇살,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해피로드 옆 흙에선 성장기에 접어든 새로운 생명의 새싹이 열심히 움직인다. 그 생명을 축복이라도 하듯 나비와 벌떼는 그들 주변을 돌며 성스러운 삶의 시작을 알린다.

생명의 작은 움직임, 그리고 그 움직임을 더욱 동적으로 꾸며주는 색색의 이름 모를 꽃들의 화려함, 여기에 절정을 향해 치닫는 신록까지 눈을 즐겁게 한다. 각자의 꽃은 또 벌을 꾀기 위해 향긋한 호르몬을 내뿜는다. 적지 않은 꽃내음이 뒤섞이지만 이질감 없이 코를 간질인다. 봄이 주는 즐거움에 마냥 기분 좋아진다. 봄을 느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정자에 도착한다. 봄이 주는 아름다움에 심취해 전혀 지치지 않았지만 한량이 쉬는데 이유가 있으랴….

신발을 아예 벗고 정자에 올라 더욱 제대로 한량질을 해댄다. 한량질이라고 해봤자 그저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의 촉각, 바람에 따라 내리는 꽃비의 시각, 다시 바람을 타고 오는 꽃비와 꽃의 후각, 대청호 인근에서 지저귀는 텃새의 작은 울음인 청각. 그리고 커피 한 모금의 미각까지 모든 감각을 열고 지금의 행복함을 느끼는 것일 뿐. 소소한 한량질이 몸에 묵었던 피로를 날리기에 충분하다. ‘직업 중에 한량은 왜 없는 것일까’하는 마음이 굴뚝처럼 커진다. 계속되는 잔잔한 고요와 평온을 충분히 느낀 뒤 지치지도 않았던 발걸음에 채찍질을 가한다.

꽃에만 집중됐던 아름다움이 이젠 금강에 꽂힌다. 꽃놀이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했던 금강의 잔잔한 아름다움이 육안에 담기기 시작한다. 바람에 따라 물결이 규칙적으로 일렁이고 바람에 산화되는 꽃비가 강변을 감싼다. 항상 푸르던 금강은 오늘만큼 고운 각시의 낯처럼 불그스름하다. 바람은 끊임없이 금강에 꽃비를 내리고 금강은 계속해서 물결을 통해 꽃의 파도를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재밌는 볼거리지만 다른 한편으론 꽃이 지고 결국 짧은 봄이 끝나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러나 짧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더욱 배가 된다.

 

해피로드 끝자락에 다다르자 발걸음을 뒤로 한다. 오른쪽의 금강, 왼쪽의 꽃길이 반대로 펼쳐진다. 방금 지나온 길이지만 구도가 주는 어색함에 시선을 이리저리 모든 걸 살피니 그 사이에 봄은 또 한발자국 지나갔다. 꽃비가 내렸던 나무엔 휑한 가지가 많아졌고 장대비처럼 쏟아지던 꽃비는 소나기로 잦아들었다. 꽃비는 아무리 맞아도 몸에 젖지 않으니 장대비처럼 내렸으면 좋으련만. 노모를 둔 자식 놈이 늘 후회하는 것처럼 봄의 금강과 대청호를 조금 더 봐두지 못한 아쉬움이 짙어진다.

그러나 아름다운 황혼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금강의 끝나가는 봄은 여전히 아름답다. 봄을 보내지 않으려 하는 듯 바람도 제법 잔잔해진다. 잔잔해진 바람에 이제 꽃은 낙화하지 않고 가지에 앉아 살랑살랑 거린다. 남은 꽃이 지지 않길 바라며, 그리고 어느덧 짧아진 봄을 마주하는 순간을 피하고자 처음으로 다리를 재촉한다. 짧은 봄에 대한 미움과 푸른 신록으로 더욱 빛날 대청호에 대한 기대감이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한다.

글 사진=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영상=정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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