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 숭고한 대전정신을 후손 만대에 전해야 한다.
[오늘의 큐레이션] 4·19혁명 도화선, 대전 3.8민주의거 아시나요?
대전지역 민주화운동의 효시이자 4·19혁명의 단초가 된 3․8민주의거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3·8민주의거는 1960년 3월 8일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이 자유와 민주, 정의를 수호하고자 불의에 항거했던 민주의거로 대구 2․28민주화운동, 마산 3·15의거와 함께 4·19혁명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된 민주화운동입니다. 그런데 사실 무관심 속에 있었는데요, 지금이라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대전의 자부심 3·8민주의거, 국가기념일 지정돼야"
3·8민주의거는 1960년 3월 8일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서 대전지역 고등학생들이 자유와 민주, 정의를 수호하고자 불의에 항거했던 민주의거로 대구 2․28민주화운동, 마산 3·15의거와 함께 4·19혁명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된 민주화운동이다. 범시민추진위원회는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결의대회, 서명 운동 전개, 열린 포럼, 음악회 등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3·8민주의거 기념일의 국가기념일 지정 촉구 결의안이 이명수 의원 대표발의로 채택돼 기념일 지정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4·19혁명 불씨를 틔우다, 대전의 3월
이날 1000여 명의 대전고 학생들은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되는 야당부통령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연설회와 때를 맞춰 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독재타도와 학원의 자유를 외치며 격렬하게 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나 대전 시내 고교생들이 연대해 시위에 참가하기로 한 작전은 사전에 발각돼 경찰의 극심한 저지를 받았다.
[특집 인터뷰] 3.8 민주의거의 기록
대전 서구 둔산동 둔지미공원(이마트 둔산점 옆)에 우뚝 서 있는 3‧8민주의거기념탑에는 그날을 기억하는 시 ‘증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시인은 잊지 못할 그날을 가슴으로 쓴 시가 민중의 가슴에 새겨지길 바랐다. 시를 쓴 주인공은 현재 3‧8민중의거기념사업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김용재 씨.
사진으로 보는 ‘그 날, 그들. 그리고 오늘'
-3·8대전민주의거 당시 대전고등학교 재직 중이었던 조남호(92) 선생을 만나다
당시 그는 데모를 위해 교실 창과 담을 넘어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의 보호를 위해 대전 인동까지 동행했다가 경찰로부터 선동자로 몰렸다. 결국 학생들을 대신해 두 손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에 끌려가게 된다. 그는 대전고등학교 운동장 옆에 위치한 ‘3‧8민주의거 기념비’를 바라보며 한 동안 묵념했다. 그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 걸까? 기념비에는 ‘여기를 거쳐 가는 대능의 젊은이여!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그날의 용기를 되새겨 항상 깨어 있어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58년 전 그날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사실 두려워요. 제가 하고 있는 이 행동이 어떤 결과가 될 지도 정확히 알 수도 없고요. 그런데 눈 감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누군간 잘못됐다고 말해야 우리 세상도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두 주먹 뿔근 쥐고 외친 한 마디. 청년의 말처럼 어렵게 행동에 나선 학생들의 움직임은 15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장면 민주당 부통령후보의 선거강연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사설] 대전 3.8의거도 국가기념일 지정돼야 한다
4.19혁명을 비롯해 반 유신 투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은 불의에 항거하는 민중 저항정신의 맥이다. 이보다 앞서 우리 충청지역 학생들이 3.8의거를 일으켜 불의에 항거하는 역사를 열어 젖혔다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3.8의거는 마땅히 국가기념일로 지정돼야 한다. 숭고한 대전정신을 후손 만대에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