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처럼 말도 많고 탈이 많은 경우가 세계에서 있을까. 우리의 수능은 유난히 요란하게 치러진다. 수능 일에는 대부분 공공기관의 출근시간이 늦춰지고, 항공기 운행도 통제된다. 온 나라가 비상이 걸리는 셈이다. 2017년(2018학년도) 수능은 진짜 비상이 걸리다시피 했다. 수능을 하루 앞두고 급습한 규모 5.4의 경북 포항 강진이 시험을 1주일 연기시켰다. 가뜩이나 불안한 학생과 학부모들을 더욱 불안에 떨게 했다.

이번엔 교육부발 입시제도 개편 방침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을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교육부가 며칠 전 내놓은 대입제도 개편안은 역대 최대 규모다. 수능평가 방법과 선발 방법, 선발 시기 등을 송두리째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수능평가 방법만 해도 절대평가 전환, 상대평가 유지, 수능 원점수제 등 3가지 방안을 교육부는 제시했다. 선발방법에서는 수능전형과 학생부 종합전형(학종)간의 비율 결정이 관건이다. 선발 시기에 있어서는 현재의 수시와 정시 구분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통일할 것인지 등이 과제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수능 절대평가를 골자로 한 개편을 추진하다 거센 반발에 부닥쳐 ‘1년 유예’를 결정했었다. 비교적 단순한 사안인데도 난리가 났었다. 이번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은 100가지가 넘는 조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고차 방정식’을 교육부는 교육회의에 넘겨 풀어보라고 요청했다. 교육회의는 특위(13명)와 공론화 위원회(7명)를 구성해 국민참여형 공론화 방식으로 대입제도 개편권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논의방식이다. 사실상 7명의 공론화 위원에게 대입개편 논의를 맡긴 꼴이다. 교육부가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국가교육회의를 통한 공론화 방식을 선택한 것은 국민의 합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민의 여론을 듣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는 8월까지 대입 개편안을 마련해 발표하기에는 아무리 계산해 봐도 시간이 없다. 교육부는 지난 해 ‘1년 유예’를 결정한 이후 8개월 가까이 여론수렴에 손을 놓고 있다가 자문기구인 교육회의에 책임을 넘겼다.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교육회의 구성을 보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명의 위원 중 당연직 9명은 교육과 관련 없는 정부부처 관료들이고 학계·교육계 인사는 11명에 그친다. 민간위원들 중 입시전문가나 현직 교사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졸속 부실정책이 될 게 뻔하다. 한국교총, 전교조, 학부모 단체 등도 “학교 현장의 목소리와는 동떨어진 제도가 되고 말 것”이라고 비판한다.

우리의 대입전형은 1945년 해방 직후 시행됐다. 수능은 1993년(1994학년도) 처음 치러진 이후 20여 차례 바뀌었다. 거의 매년 바뀐 셈이다. 사실, 학생과 학부모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수능 치르기 그 자체보다 걸핏하면 수능이 바뀌는 데 따른 혼란이다. 교육 현장과는 무관하게 새로 등장하는 정권의 이념과 입맛에 따라 수능은 춤을 추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로 인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면서 교육현장을 흔들어대니 공교육이 제대로 뿌리를 내려 건강하게 성장할 리 만무하다. 사교육이 활개를 치고, 학부모들은 과도한 사교육비를 대느라 허리가 휜다. 교사는 설 자리를 잃고, 학생들은 교사보다는 학원 강사를 높게 평가한다.

교육정책결정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념이나 정권의 성향에 휘둘리지 않고 미래를 보는 안목으로 과감한 교육개혁에 나서야 한다. 정권의 임기에 구애받지 않는 상시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가칭)’를 구성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 문민정부에서 ‘5.31 교육개혁’을 주도했던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은 그의 저서 『5.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에서 정권의 수명을 넘어서는 초당파적 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교육부가 대입제도안을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백년대계’를 짜내야 한다. 김상곤 교육부총리는 정책 과오에 대해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