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같다.때론 쉬기도 하고 옆을 둘러볼 틈도 없이 뭔가에 쫓기듯 달리는 것 같다.인생의 의미를 숙고해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할 겨를도 없이 그저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 아닌가 싶다.그림에 무지한 나에게 피카소의 그림은 그 의미나 예술성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그런데 어떤 이가 피카소의 그림과 같이 추상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과학문명의 발달 때문이라는 괴상한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이 걸어 다닐 때는 주위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림도 정밀묘사와 같은 것들이 주류를 이뤘고, 마차나 말을 타고 다니던 때는 달리는 말 위에서는 주위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없어 크로키라는 사물의 형체만을 그리는 화풍이 생겨났고, 자동차가 발명되면서는 주위 사물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피카소와 같은 그림이 탄생했다는 것이다.미술사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또 이 주장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다만 이 이야기를 듣다보면 현대사회를 잘 묘사한 것 같아 수긍이 가기도 한다.또 어떤 이는 인생의 속도를 나이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30대에는 30㎞로 달리는 것과 같고, 40대에는 40㎞, 50대에는 50㎞, 이렇게 인생의 노년으로 갈수록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시간이 흘러가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인생은 옆으로 가거나, 쉬엄쉬엄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오직 한 방향으로만 쉼 없이 달려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싶다.정말 인생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을까? 아니 꼭 그렇게만 가야 하는 걸까? 가끔은 옆으로 가거나 옆을 보면 안 되는 걸까? 잠시 쉬면 안 되는 걸까?울안공동체 식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때론 잠시 쉬기도 하고, 옆을 보면서 가면 저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더 이상 잃어버릴 것도 없고, 더 내려갈 곳도 없는데 아등바등 집착하고, 쫓기며 살아가는 것 같다.땅바닥과 발바닥 차이는 한 뼘도 되지 않는데 떨어지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까 기진맥진한 채로 움켜잡은 줄을 놓지 못하고 힘겹게 매달려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왜 잠시 삶의 여유도 없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걸까?얼마 전 한 아저씨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이 분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사람들을 교묘하게 이용한다.때론 폭력으로 자신의 정당함을 지키려고 하는 소위 양아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그래서 그 분에게 울안공동체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습성을 조금씩 바꿔나가자고 말했다.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무료헬스장에서 운동은 해도 일을 하라면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하고, 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빠진다.그래서 그것을 지적하면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과민방응까지 보인다.이 분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은 자존심인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그 자존심이 자신을 병들게 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것을 놓지 못한다.우리가 사는 인생을 뒤집어 보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내가 살아온 만큼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거꾸로 본 우리의 모습이다.이미 거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마지막 남은 그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게는 못하는 걸까? 그것만 내려놓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할 수만 있으면 희망은 자신을 열어 마지막 남은 것을 내려놓을 때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그러기에 그것을 빼앗기면 끝인 것처럼 전전긍긍하는 그들의 생의 한복판을 헤집고 들어가야겠다.원용철(벧엘의 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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