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Olympia)의 모든 것

사람이 많이 살 필요 없다. 그 곳은 신의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나무가 나오는 길을 한참 달리다가 바다를 끼고 내달리면 끝없는 억새가 맞이한다. ‘이제 다 왔나싶으면 아직도 멀었다고 구글(Google)이 떠들어댄다. 그 작은 마을에 하루를 묵고 난 후 다리를 건너 올림피아 신전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을 건너서는 것처럼 안개를 걷고, 새벽을 열고 신이 우릴 맞이한다.

그 어마어마한 뭉클함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내가 서있는 이 끝에서 저 끝이 올림피아의 모든 거리였다. 이렇게 좁은 곳이 우리가 꿈꾸던 올림피아라는 사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얼마 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를 받으러 박지성이 왔었는데 어느 호텔에서 묵었는지 말해주면 내가 단박에 찾아갈 수 있는 사이즈의 마을이었다.

길 헤매기 천재인 나에게도 쉬워 보이는 올림피아는 겨울엔 불모지다. 사람이 오지 않는 내륙 깊숙한 숨겨진 공간이었다. 이곳까지 올림픽에 참여하겠다고 길게는 6개월을 걸어와야 했다. 그렇게 잠시 분쟁을 쉬고 비장한 마음으로 제우스(Zeus)의 도시 올림피아에 찾아왔을 고대인이었다.

그때라고 지금보다 도시가 컸을 것 같진 않고 아마 저 커다란 나무를 기점으로 눈에 보이는 만큼이 제우스의 도시였을 것이다. 기대치가 있다 보니 사이즈가 실망스러웠다. 아테네(Athens)부터 8시간을 달려온 시점이었으니 열이 올라갈 법도 했다.

한겨울 그 호텔엔 나뿐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온 사장님이 철문을 열고 호텔을 개시했다. 몇 달을 안 쓸어낸 건지 갇힌 먼지 냄새가 코 안에 가득 들어왔다. 이제라도 파트라스로 넘어갈까. 아니다, 그럼 내 인생에 올림피아는 없다. 참아보자.

내가 마치 올림피아를 깨운 듯 내가 다가서니 그 집 불이 켜졌다. 사람을 봐서 반가운건지 친절한 건지 무언가를 시키면 입에 넣어줄 기세였다. 슈퍼에서도, 가게에서도 낯선 검은머리 아줌마가 신기한지 끝없이 질문한다. 물을 사면 비누를 끼워주고 음료수를 사면 작은 올리브를 더 주는 신기한 곳, 겨울 올림피아였다.

3일을 있으니 우리는 위 아더 월드가 돼 호텔 철문을 있는 힘껏 밀고 나와 나무 아래서면 뮤지컬처럼 올림피아 사람들이 인사 한다. 올림피아의 매력은 아무것도 아님에 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라는 말 자체가 근대의 선물이다. 과거, 예술이라는 말은 없었다. 단지 신분제 사회에서 위세용 제품들에 돈과 시간이 집중되며 화려하게 치장된 것이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더 이상 엄격한 신분제가 사라지니 어떤 화려하거나 깊이 있는 장르를 예술로 단정 지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술은 무엇인가. 거리에 걸어가는 이름 모르는 그녀의 뒤태가 아침부터 예술이 되고, 광고 속 늙지도 않는 정우성의 미소가 예술이 되고, 천정부지의 비싼 그림이 예술이 되는 것인가.

올림포스 호텔 유일한 투숙객인 나는 은근히 아침이 걱정이었다. 여행하며 따뜻하고 풍성한 아침은 또 다른 여행 아니던가. 내가 언제부터 빵을 먹었다고 빵 타령인가 싶다가도 갓 구운 크로와상에 생버터를 발라 진한커피와 함께 먹으면 세상이 내 것인 것만 같다. 유럽에선 빵에 무슨 짓을 하는지 노빵 클럽인 나는 유럽에선 빵조아족으로 변하게 된다. 이 무슨 조화일까.그러나 겨우 한명인 나를 위해 올림피아는 과연 아침을 줄 것인가. 그런 잡다한 생각으로 오른 호텔은 5층이 식당이다. 멀리 푸르른 새벽을 밀고 별이 사라지면 곧 태양이 밀려오는 장면을 아이맥스 영화처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올림피아는 평지였다. 그리스에선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 때문에 건물 옥상만 올라서도 세상이 다 보였다.

모든 음식이 차려져있었다. 이슬비 나리는 새벽 운치를 살린 키스 더 레인(Kiss the rain)’이 흘러나오는 홀에 앉아 나는 벨 아가씨가 됐다. 야수가 준비해 놓은 만찬을 혼자서 노란 드레스를 입고 즐기는 미녀가 된 것 같았다. 이 많은 음식을 어쩌려고 차렸을까. “이걸 다 어찌 하냐고 물으니 당연하다는 듯 그 고민은 호텔의 것이라고 너는 즐기고 행복하면 된다고 말해줬다. 이럴 경우 대다수 호텔들은 접시에 음식을 차려 각 테이블에 세팅을 해준다. 그러나 올림피아는 그런 꼼수가 없다. 온전히 나의 편안함에 맞춰져 있다. 나는 이런 배려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교복을 세탁소에 맡기고 찾으러 가야해 대전에 9시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아직도 도로 위다. 교복 못 찾으면 체육복 입혀 보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잘 챙기지도 못하는데 월요일부터 체육복이라니. 두려움에 애가 타 도착하니 30분이 훌쩍 지났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세탁소로 갔는데 불이 켜져 있다. 내가 올 줄 알았단다. 도저히 도착할 수 없는 일이 있겠지 해서 전화도 안하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나의 패턴을 읽고 계셨고 가만히 기다리셨다.

괜히 가슴이 먹먹했다. 30분이 나는 예술이라고 생각 한다. 배려와 감동, 그리고 깊은 떨림이 나에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트(Art)였다.

예술은 마음이었다. 무심함과 오지랖의 그 얇은 대나무 속껍질 같은 차이가 바로 예술이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예술이 돼주고 있는가.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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