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대전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장

오래 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논란이 됐다. 곧바로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맞불 성격의 책도 나왔다. 이후로 'OO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죽을 건 죽어야 하고 살릴 건 살려야 한다. 죽어도 될 것을 살리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반면에 살아야 할 것을 죽이는 것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다.

우리의 효문화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효가 ‘사라졌다’, ‘무너졌다’ 말하며 한탄한다. 실제로 상당부분 사라지고 무너졌다. 이 때 어떠한 효가 사라지고 무너졌는가가 더 중요하다. 사라질 게 사라지고 무너질 게 무너졌다면 아쉬워할 것도 없다. 그런 것들은 전통 효문화란 명목으로 박물관 전시실에 남겨두면 그만이다.

문제는 사라져서는 안 될 효문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보통 효문화를 사라지게 하는 요인으로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팽배를 말한다. 틀리지 않다. 우리는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농경사회 노동집약적 공동체 가족주의의 산물로 효문화와 가족주의를 말했다. 나와 가족, 나아가 이를 포괄하는 공동체가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던 시대이다. 공돌이, 공순이가 되어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또 어떤 수모를 당한다 하더라도 가족의 생계와 공동체의 장래를 염려하며 감내했다. 나보다는 가족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다.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서 기꺼이 나를 희생하던 시대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효문화는 더욱 성숙했다.

하지만 제4차산업혁명을 말하는 이 시대 이런 생각들은 점차 희석되고 있다. 내가 있어야 가족도 공동체도 있다는 자의식의 자각이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우선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당연한 흐름이자 귀결이다. 농경·산업시대의 전통적 사고로 보자면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비쳐진다. 그런 가운데 전통적 효문화는 설 자리를 잃어만 갔다. 3D업종(Dirty, Dangerous, Difficult)의 기피와 맞물려 ‘부모에게 잘하는 것’을 효라고 말하는 개념적 사고는 옛날 얘기가 됐다. 과거 모범적인 효행사례도 전설이 됐다. 부모 공경을 위한 자신과 자녀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효행들이다. 근대화 시절 이런 효행을 ‘허위도덕(虛僞道德)’이라 비판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과거의 효행 사례들은 이제 박물관 한 구석의 전시물에 지나지 않게 됐다.

문제는 당연히 지켜야할 자녀의 기본 도리조차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부모와 어른을 위한 작은 희생과 봉사는커녕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그래서 장년이 돼서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자녀가 느는 것은 이 시대가 점점 효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받은 사랑 돌려드리는 것을 효라고 한다면 효는 사라지고 내리사랑만 존재하는 격이다. 사랑을 받았다면 당연히 갚아야 하는데, 갈수록 갚는 것은 어려워지고 내내 받기만하는 상황이다. ‘부자자효(父慈子孝)’가 정상적인 모습이라면, ‘부자(父慈)’만 남고 ‘자효(子孝)’는 사라진 형국이다.

거기에는 복지사회도 한 몫 한다. 복지를 강화할수록 노인은 풍요롭게 되고 청년층은 상대적 빈곤에 시달린다. 서구 복지국가들이 보여준 경험사례이다. 우리사회가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복지는 제도이고 효는 정신에 가깝다. 제도는 경제적 기반이 필수이고, 정신은 의지의 문제이다. 가난해도 가정과 사회를 지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강한 효정신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했어도 노인들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효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와 복지는 상호보완관계이지 대체항목은 아니다. 효 대신 복지로 이 시대 노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복지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복지사회로의 지향은 오늘날 바꿀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다. 하지만 그것은 강력한 재정적 뒷받침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효문화를 활용한다면 상당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 서구사회와 비교해서 넉넉지 못한 한국사회가 추구할 복지모델이 효문화와의 적절한 융합에 있음을 보여준다. 복지의 한계를 메워줄 효문화진흥이 요청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나가 공감하는 효문화진흥은 우리사회를 복지국가로 만드는 또 하나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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