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강예리

초등학교 어릴 적, 수업 중
부리나케 달려간 병원
그곳 침대 위에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다.

그 후론
걷는 것도
일어서는 것도
혼자선, 할 수 없게 되신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간병하시느라
옆집 할머니 집 마실 한 번 가지 않으신 할머니
8년이란 긴 세월
불평 한 번 없이
매일 매일
틀니 닦아주고
대소변 가려주시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할매, 내가 다 나으면
호강 시켜줄게”
하시면

그럼 할머니는
“밥이나 먹어”
하신다.

▣어이쿠, 저런! 저걸 어쩝니까? 할아버지께 대형사고가 났군요. 아마도 경운기 사고나 차 사고쯤 되나 봅니다. 병원에 입원해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해 혼자 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할아버지 간병에 꼼짝없이 할머니가 붙들려 있습니다. 안 봐도 알겠군요. 할아버지도 그렇지만 할머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옆집에 마실 한 번 못 가고 8년이란 세월을 꼼짝 없이 할아버지 곁에서 틀니 닦아주고 대소변 받아내고. 또 덜컥덜컥 드는 병원비에 얼마나 가슴 조였겠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지겨워 신물이 나고 진저리가 쳐질 텐데, 그러나 할머니는 불평 한마디 없습니다.

늘그막 고된 팔자에 혼자 눈시울 젖는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할아버지, 병 다 나으면 호강시켜주겠다고 합니다. 미안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러나 왠지 미덥게 들리지 않습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우리나라 남자(가장)들에게 흔히 보이는 허풍기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말에 할머니, 그런 쓰잘데기 없는 말 그만하고, 얼른 밥이나 먹으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많은 가정이 이 할머니네 집처럼 남자보다는 여자의 힘에 의해 유지되어 왔습니다. 일 하랴, 애 낳아 기르랴, 그런 와중에 또 속을 바글바글 끓이고, 서러우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 새 눈시울이 시룩시룩. 그런데도 울음을 억지웃음으로 바꾸며 살아온 어머니 할머니들 덕분에 한 집안이 건사했습니다.

<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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