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팬주룽의 마지막 전쟁⑧

대망새는 군사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병사들을 희생시키면 고다리를 잡을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수백 명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 건곤일척(乾坤一擲), 오로지 대망새와 고다리의 승부만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측근참모들과 군사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늘과 땅, 풀과 나무가 음울한 공기에 갇히고 공허한 들판을 가득 메운 병사들의 심장은 거친 북소리를 따라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드디어 고다리가 나선 것이다. 고다리는 문제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지국천왕(持國天王)이 돼 있었다. “어느 놈이 대망새냐? 허수아비 인형 같은 졸개 놈들은 짚어 치우고 나랑 당당히 붙어 결판을 내자!”

대망새를 찾는 고다리의 금속성 목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했다. 대망새는 마음으로 ‘호랑이’를 부르며 고다리 앞에 섰다. “내가 대망새다!”
대망새는 아버지의 유품인 도끼를 손에 들고 고다리의 두 눈을 잠잠하게 바라보았다. 대망새의 잠잠한 눈빛은 고요한 것 같으면서도 매서운 광채를 뿜어 도무지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과연 개세지풍이로다…)

고다리는 대망새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절구통 같은 창을 ‘휘잉~’ 휘둘렀다. 대망새가 고개를 숙여 피하자 이번에는 발쪽으로 창을 휘둘렀다. 대망새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고다리는 날아다니는 파리를 베듯이 수십 번 창을 휘둘러댔다. 고다리의 창은 들판의 잡초들을 뿌리째 뽑고, 나무의 가지들을 부러뜨려 벌거숭이로 만들어 놓았다. 기분이 나빠진 고다리는 들고 있던 창을 대망새를 향해 힘껏 던졌다. 화살과 같은 속도였다. 그러나 대망새는 몸을 살짝 비껴 날아드는 창의 몸통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창의 몸통이 두 동강 나자 고다리의 송충이 눈썹이 희룽거렸다. “이노옴~ 제법이구나. 그렇게만 도망 다니지 말고 정면으로 한 번 붙어보자!”
(저 놈이 호랑이와 다른 점은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구나. 놈의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대망새는 고다리가 원하는 대로 정면대결을 하지 않았다. 놈에게 한 방이라도 맞거나 잡히는 순간 갈기갈기 찢기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고다리는 대망새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대망새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빈틈이 생기면 번개처럼 덮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망새는 고다리의 눈빛을 탐색하듯 쳐다만 볼뿐 찰나의 빈틈을 주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고다리는 일부러 허점을 보이며 대망새에게로 달려드는 시늉을 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이쯤 되면 본능에 따라 ‘움찔~’이라도 했을 텐데 대망새는 바위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다리의 눈빛을 읽은 것이다. 그쯤 되니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웃음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몸집의 곰이 토끼 한 마리를 못 잡아 발만 동동거리는 꼴과도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고다리의 우스꽝스런 행동으로 팽팽하게 도드라졌던 병사들의 혈관이 누그러졌다. 그러자 고다리가 갑자기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대망새를 덮쳤다. 마치 호랑이가 먹이 감을 노리다가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자세였다. 팔 척이 넘는 육중한 몸이 그야말로 비호처럼 날아오른 것이다. 여태 그 누구도 고다리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고다리 자신도 누구를 상대로 그런 공격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낮게 날아드는 고다리의 공격은 완벽했다. 대망새는 순간 당황을 했으나 이내 힘차게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생각에 앞서 본능이 시키는 대로 따른 것이다. 대망새의 본능은 몇 시간 후 고다리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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