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 사건을 파고 든 이유

어디서 어떻게 사라진지도 모르는 김영훈·영숙 씨 남매를 37년 만에 찾아낸 건 도희·유희 남매를 둔 아빠였다. 실종 당시 일곱 살이던 영숙 씨 사진을 보고 있자면 같은 나이의 딸 유희가 떠올라 꼭 찾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단다. 1981년 8월경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훈·영숙 씨 남매사건의 미스터리를 8개월 만에 풀어낸 장덕환(40) 경사를 25일 충남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사무실에서 만났다.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인터뷰를 고사하는 장 경사에게 지휘계통의 압력(?)을 행사한 끝에 겨우 설득할 수 있었다. 


장덕환 경사(왼쪽)와 박상복 여성청소년수사계장. 문승현 기자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 영훈 씨 사진부터 물었다. 사진은 남매의 부모가 경찰에 제출한 유일한 단서다. 장 경사는 “사건 자체가 워낙 오래 전에 발생한 것이고 실종 정황을 알고 있는 남매의 작은아버지도 사망한 상황이어서 시간만 나면 사진을 들여다봤다”며 “사진 속에서 영훈이가 짙은 색의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이 어느 날 눈에 박힌 듯 들어오는데 한마디로 ‘이거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남매의 친인척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여 영훈이가 학교에 다녔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바로 인근 학교들을 다 뒤졌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아산지역 한 마을 초등학교에서 영훈이의 생활기록부를 확보한 것이다. 1981년 7월까지 작성된 생활기록부와 친인척들의 진술을 근거로 장 경사는 남매가 8월경 실종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아산에서 조부모와 살다 작은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부모에게 데려다주는 길에 잃어버렸다는 게 사실관계의 전부인 장기미해결사건의 미로에서 출구를 찾은 것 같았다고 장 경사는 떠올렸다. 

또 남매의 출생연도와 이름이 같은 전국 각지의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가 무위로 돌아갔을 때 ‘해외입양’ 가능성을 상정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장 경사는 “1980년대 해외입양이 성행했다는 점에 착안해 관계기관에 문의한 결과 남매가 1982년 2월경 프랑스로 입양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실종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 사진. 충남경찰청 제공

하지만 국내도 아닌 프랑스에서 37년 전 남매의 사진과 이름만으로 행방을 찾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사권에 한계도 있었다. 장 경사는 프랑스 경찰주재관에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현지교민들이 많이 찾는 한인협회 등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에 일일이 글을 올려 도움을 청했다. 

장 경사의 간절한 부탁에 손을 내민 사람은 신금섭 한인목사였다. 신 목사는 자비를 털어 남매를 입양한 프랑스 양부모의 주소지를 찾아 나섰고 지난 1월말 그곳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남매의 생사를 확인하기에 이른다. 경찰의 정확한 수사방향 설정과 끈질긴 탐문, 관계기관과 프랑스 교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졸지에 자식 잃은 부모와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부모를 원망하며 살아온 남매는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됐다. 

장 경사는 “두 아이의 아빠로서 어린 남매를 잃어버린 노부부의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꼭 찾아주고 싶었다”며 “수사가 고비를 겪을 때마다 같이 고민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장기실종전담수사팀 팀원들과 여성청소년수사계 식구들, 프랑스 현지교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공을 돌렸다. 내포=문승현 기자 bear@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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