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봄은 그렇게 온다

◆그리스의 봄, 한반도의 봄

페르시아(Persian) 제국과 전쟁을 막아낸 그리스는 지중해에서 파워가 막강했다. 자존심을 철저히 구긴 페르시아는 그다지 얻을 것 없던 서쪽 에게 해(Aegean Sea)의 거친 땅을 놓아버렸다.

그리스는 페르시아와의 승리로 자부심이 끝없이 상승했고 그간 쌓았던 소소한 질서를 지중해의 절대 기준으로 정립했다. 이 때 만들어진 역사적 건축물이 파르테논(Parthenon)이다. 전쟁 배상금은 델로스(Delos) 섬에 보관됐고 그것은 그리스 모든 사람들의 노후 자금이 됐다. 그러나 피와 맞바꾼 돈은 아테네가 파르테논 건축뿐만 아니라 도시 재건에 모두 탕진해버렸다.

안 그래도 으스대는 아테네가 미웠던 스파르타는 코린토스(Corinth)와 연합해 펠로폰네소스 동맹(Peloponnesian League)전선을 펼치고 전쟁을 선포했다. 기원전 431~404년에 있었던 펠로폰네소스 전투가 이것이다. 30년에 걸친 참화는 그리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머리가 둘일 수는 없었을까. 전쟁 후엔 내전도 찾아왔다.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아테네의 문화수준은 가히 최상이었지만 전쟁 중 문화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아테네는 스파르타(Sparta) 손에 의해 질식사 당하고 말았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을 두고 역사는 그리스의 자살이라 부른다. 이렇게 제 집구석에서 펼쳐진 자기들끼리 힘자랑에 어부지리로 마케도니아(Macedonia)가 이득을 봤다. 허무한 결말이다.

등골이 서늘했다. 우리는 지금 라이브로 한반도의 자살을 지켜보는 중이다. 우린 한반도 안에서 65년째 자살중이다. 우리는 서로를 못 믿으니 무서워서 일본에, 중국에, 미국에 당당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사드(THAAD)배치에 중국은 방을 빼버렸다. 그게 무서워서 사드배치 안할까 하다 미국 방 빼는 게 두려워 결국 눈물로 배치를 선택했다.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지만 우린 지금 많이 아프다. 북쪽 우리 형제는 끝없이 전쟁의 공포를 미사일로 보여주고 있었고 해외에선 정전 상황에서도 믿을 수 없이 평온한 한반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65년째 우리는 전쟁 중인 상태인 걸 나도 잊고 있다.

통일이 적합한가, 불가한가. 전쟁이냐, 평화냐. 공존이냐, 흡수냐. 나는 잘 모르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강대국 헛기침에 감기몸살 걸려야하는, 시름시름 앓아야 하는 내 나라가 안타깝다. 단 하루라도, 정말 단 하루만이라도 스스로 설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여기 저기 눈치 보는 새가슴으로 구걸하는 나라말고, 잘사는 나라말고, 당당하고 가치가 살아 숨 쉬는 나라에 단 하루라도 살고 싶다.

그날이 오는가 싶더니 덥석 11년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 소식과 함께 종전이 와버렸다. 이렇게 하루 만남에 정리할 수 있는 종전 논의의 시작까지 65년이 걸렸다. 그래서 오늘 판문점에서의 만남이 나는 지금도 감사하고 감격스럽다.

정치는 우주만큼이나 변수가 많은 복합체라는 걸 알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많은 상황을 껴안고 있다.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야겠다. 어느 공간, 어떤 자리에서든 결연한 자세를 유지하고 싶다. 청일전쟁도, 러일전쟁도 한반도에서, 한국전쟁도 엄밀히 보면 냉전(Cold war)시대 마지막 땅따먹기였는데 그 게임도 이 곳 한반도에서 치러야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비참한 전망과 함께 초토화됐다.

단 하루라도 온전히 우리만을 위해 고민하는 나라에 살고 싶다. 그게 자유민주주의 아닐까.

사랑하는 내나라. 뿌리부터 아파 지금 말이 아니지? 힘들지? 그래도 우린 한 번도 우리 색을 잃지 않았던 민족이었어. 크게 아팠으니 이제 찬란 하자. 2018427, 판문점에서 이제 우리의 전쟁은 끝났으니 말이다.”

한반도의 봄. 빼앗긴 들에도 왔던 봄! 오늘 오는 봄! 지금 오나 봄! 내년엔 평양 가서 글 쓰고 금강산에서 커피 마시며 소식을 전하고 싶다.

우리에게 직업은 귀천이 없는가?

아테네 도시설계는 망했다. 독일 전문가가 들어와 독립전쟁이후 다시 수도 아테네를 리모델링했다는데 그 전문가 비용이 만만치 않자 스스로 해볼테니 나가라고 했단다.

과감히 유럽형 기획은 버리고 도시 계획 따위는 무시해버렸다. 그 결과 신화 속 미로도시 라비린토스(Labyrinth)가 돼버렸다. 아테네는 직진하면 좌회전이다. 길이 그렇게 돼있다. 얼기설기 벌집처럼 더덕더덕 붙어있다. 아니 벌집은 육각형이나 맞춰놨지만 이건 그도 아니다. 파르테논 신전 언덕을 향해 스탠딩 콘서트하듯 제각각 알아서 서있다. 재미는 있다만 운전하기나 길 찾기엔 화가 난다.

그 막히는 길에 사람도 많은데 쓰레기차가 맨날 있다. 그 육중한 녀석이 막으면 답도 없다. 어우 기가 막혀라. 관광객은 왜 불러서 고생시키나. 아이가 말하길 엄마, 나는 쓰레기 치우는 거 처음 봐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골목길에선 청소차가 잘 안 보인다. 재활용 수거 차량 말고 청소차를 생각해보면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치워버린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건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새벽 5시가 되기 전 모든 음식물과 일반쓰레기가 치워진단다. 거대도시는 새벽 2시면 이미 일이 시작되고 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그분들은 새벽에 일을 하신다고했다.

좁은 골목은 차가 들어갈 수 없어 개조한 오토바이로 작업을 하신다는데 일하다가 온몸에 냄새가 배어 식사를 하러가지도 못하고 대중교통을 탈 수도 없다. 아침 싸오면 돌처럼 밥이 얼어서 뜨거운 물을 편의점에서 받아서 훌훌 마신단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길도 막히는데 냄새나게 쓰레기차가 웬 말이냐고 민원전화통에 불이 난다.

누구의 직업은 귀하지 않던가. 왜 누구의 희생은 당연한 것인가. 그 새벽 언 밥 넘기는 그 아비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 희생을 감수하는가.

갑자기 뜨거운 게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우리의 거리청소는 새벽에만 가능한 것인가. 제가 쓰고 더럽힌 결과물에 왜 치워주는데도 말이 많을까.

새벽길 운전하다보니 1시가 넘어간 시간, 정말 골목에서 그 분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계셨다. 나는 용기를 내 두유를 내밀었다. 모두 함께 존중받고 누리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살 때는 난세(亂世)일 때만 인정되는 것이다. 함께, 같이, 행복 할 길을 찾아가보자. 직업에 귀천이 없다 말하면서 우린 직업 골품제 사회에 살고 있다. 내 행복 뒤 자신의 행복을 숨겨야하는 사람이 없는지 더 찾아봐야겠다.

꼼짝도 하기 싫어 전화만 붙들고 시키는 사람들, 말도 안 되게 싼 택배비. 난 물은 결코 택배로 안 시킨다. 쌀도 안 시킨다. 얼마 전 자살한 집배원의 전날 폐쇄회로(CCTV) 영상은 또 나를 울컥하게 했다. 걷기도 버겁게 다리 늘 절고 있었다. 너무 몸이 아프니 자식 두고 자살로 생을 접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사람이 우선인가, 내가 우선인가.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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