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옷을 한창 자랑하는 대청호는 어느새 신록이란 새로운 옷을 입었다. 산과 들은 물론 봄에 깨어난 새싹이, 그리고 얼마 전 분홍으로 모든 이를 사로잡던 벚꽃까지, 세상 만물 모두가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사시사철 늘 푸른 대청호는 신록의 계절에도 꿋꿋이 자신의 색을 자랑하며 신록 못지않게 청정함을 내뿜는다. 어느 새 봄은 저만치 가고 한껏 가까워진 여름 한달음에 곧 도착할 것 같다. 이제껏 이어져온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대청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이맘 때쯤 신록의 숲을 걷는 방문객을 맞이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 중 먼저 소개한 첫 번째 구간은 백골산이란 거대하진 않으면서 나름 거대한 산이 있어 조금 힘들었다면 두 번째 구간은 비교적 편안하다. 5구간의 첫 번째 여정의 도착점인 방축골에서 잠시 쉬었던 5구간의 두 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방축골이란 지명은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전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황해북도에도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방축골이란 지명은 많지만 어원은 거의 비슷하다. 방축과 골의 합성어다. 방축은 물이 밀려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둑인 방죽에서 유래했고 골은 골짜기다. 방죽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골짜기에 물이 방죽을 쌓아야 할 정도로 많아서 붙어진 이름으로 설명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결국 물이 많이 들어오는 골짜기란 지역으로 보는 게 제일 편하다. 실제 방축골이란 지명을 찾아보면 모두 가까운 곳에 물가가 항상 있다. 대청호에 있는 곳 역시 지금이야 대청호가 있지만 과거엔 금강이 인접한 지역이었다.

방축골은 현재 대청호에서 음식 좀 하는, 이름깨나 날리는 식당이 밀집했다. 이 때문에 생각보다 차량이 많이 오고가 이동하는 데 불편함은 없다. 방축골에서 뒤집혀진 반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대청호에서 작약꽃으로 유명한 곳이 나온다. 한창 꽃을 피우는 5월 중순부터는 5월 하순까지는 새벽부터 작약꽃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한 사진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다만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은 긴 꽃대만이 남았다. 꽃을 틔우려면 아직 멀었지만 봄을 상긋함을 알린 노란 개나리에 이어 봄의 화창함을 뽐낸 분홍 벚꽃, 그리고 하양과 진한 분홍의 어우러진 작약꽃이 조만간 신록의 아름다움을 배가해줄 준비가 한창이다. 벚꽃이 진 지금 혼자 봄을 달래기엔 쓸쓸한지 햇살은 예전보다 조금 더 바삭해져 꽃망울을 깨우기 바쁘다. 조만간 일어날 작약꽃대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면 아직 제철을 만나지 못한 갈대와 억새가 너저분하게, 좋게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청호를 가린다. 길이 나있지만 나있지 않은 길을 헤쳐 나가면 갈대와 억새의 모습은 사라지고 5구간 두 번째에서 처음으로 대청호를 마주할 수 있다. 대청호에 손과 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마주한다.

 

이제까지 대청호는 꽤 높은 지대에서, 아니면 제법 떨어진 곳에서나 봤기 때문에 언제나 거대한, 경외심을 들게 할 정도의 웅장함을 보여줬다면 이곳에서만큼은 동네친구처럼 편하고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 바람에 일렁이는 대청호의 파도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들린다. 이곳은 작은 반도 모양처럼 돼있어 크게 한 바퀴를 돌아도 20분이면 충분하다. 짧은 동네친구 같이 소박하면서 진국임을 느끼고 지방도 571호선으로 향한다. 이곳은 엊그제 막 산화한 분홍의 벚꽃길이 위치한 곳이다.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긴 벚꽃길로 대전 동구 신상동에서 충북 보은 회남면까지 26.6㎞나 이어진다. 국립수목원이 선정한 아름다운 벚꽃길 20선에 뽑힐 정도로 이곳의 벚꽃 커튼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러나 벚꽃을 뒤로한 자리엔 벚꽃처럼 화려함은 없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벚꽃잎이 연둣빛으로 수수하게 화장을 고치고 신록의 커튼을 만든다.

신록의 커튼 속에선 여름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이 상쾌함만이 가득하다. 파란 하늘과 구름까지 가려버리지만 태양의 신 아폴론이 쏜 화살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올곧게 쏟아진 바삭한 햇살은 신록의 커튼에 방해받아 기분 좋게 주말을 깨우는 작은 눈부심의 아침햇살에 불과할 정도다. 신록을 뚫고 온 햇살을 보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이곳을 찾은 인적이 오랜만인지, 고개를 높인 든 길섶의 꽃잎도 봄을 느끼느라 바쁘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대청호의 출렁이는 소리만이 한껏 신록의 커튼을 뚫고 들어와 고막을 살짝 쿵 때린다. 작은 눈부심과 고막을 간질이는 대청호의 융합이 가슴 속 깊은 곳에 응어리져 올라오는 뭉클함을 이끌어낸다.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뮤지컬로 꾸민다고 해도 만족감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기분 좋을 때 흥얼거림이 나온다. 가끔 나오는 오르막이 대청호만의 뮤지컬을 깨버리는 들숨과 날숨을 뱉게 하지만 ‘이 또한 없었으면 심심했으리…’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평온하게 길을 안내한다. 이제 막 늘그막에 든 우리네 아버지의 흰머리처럼 대청호는 희끗희끗 모습만 드러내며 자신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가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때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모르는 사람 앞이 부끄러운 어린 아이처럼 금방 숨어버린다. 신록의 커튼과 대청호가 주는 편안함에 걸음걸이는 기분 좋게 무거워졌지만 어느 새 5구간의 마지막인 방아실 입구라는 이정표가 기분 좋은 여정이 끝났음을 알린다.

◆5구간 보고서
5구간은 전체적으로 볼 때 균형이 잘 잡힌 구간이다. 흥진마을에서 백골산 이전까지 가벼운 트레킹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기-승’이라면 백골산은 절정에 달하는 ‘전’이고 방축골부터 방아실입구까지 끝맺음을 담당하는 ‘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흥진마을 구간은 가볍게 조성된 트레킹코스인 만큼 걷기에도, 그리고 대청호를 바라보기에도 완벽하다. 그러나 바깥아감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백골산행은 다리를 매우 지치게 할 수 있어 중간마다 쉼터가 필요해 보인다. 특히 제법 경사가 가팔라 직선으로 오르지 못해 갈지자로 구성된 구간에서는 지친 다리를 달래줄 장소가 필요하다. 5구간에서 절경이라 할 수 있는 백골산 정상에도 정자나 쉼터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방축골부터 방아실 입구까지는 전국적으로 벚꽃길로 유명하기 때문에 관리가 잘 됐다. 그러나 바깥아감에서 백골산으로 향하지 않고 방축골까지 이어진 데크가 이곳엔 설치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 물론 데크길 설치를 위한 부지가 확보됐지만 벚꽃길은 방축골부터 시작되는 만큼 빠른 사업이 시행돼야 한다. 벚꽃길로 유명하기 때문에 곳곳에 위치한 주차장 부지에 시즌에만 활동하는 푸드트럭 유치 등은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 기자
영상=정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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