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 열전 1편

나의 산토리니(Santorini)

20년 전 산토리니에 갔었어요. 23kg 무게의 배낭을 메고 어렵게 지브롤터(Gibraltar)해협에서 땡처리 티켓을 싸게 구해 크루즈를 시작했지요. 타이타닉(Titanic)의 잭 도슨(Zac Dawson)처럼 얻어걸린 티켓을 들고 배에 올랐지만 지하의 정말 손바닥만 한 공동 침실(Dormitory)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그곳에도 빈부(貧富)차가 있었습니다. 그 거대한 크루즈에 그런 코딱지만 한 방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화려하지만 어리고 돈 없는 여행객에겐 디너(Dinner) 파티나 숍(Shop)에 입고 갈 옷이 없었어요. 배낭은 모든 옷을 후줄근하게 만드는 힘이 있거든요. 왜 그렇게 콤콤한 냄새는 여행을 따라다니는지 배낭 속은 항상 골치 아픈 섞임과 꼬랑꼬랑한 냄새의 향연이었습니다.

7개의 수영장, 셀 수도 없는 방, 식당, 카페, (Bar), 피트니스 센터, 쇼룸, 상점 등 기상천외한 시설들은 그림의 떡이었고 저는 어느 곳에도 편안하게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왜 원피스하나 챙겨 갈 생각을 못했을까요. 나는 왜 지중해 여행에 스키복을 입고 간 걸까요. 그것도 빨간색으로. 나의 화려한 크루즈는 슬픔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내려주는데 저는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몰라 화가 났습니다.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런 꼴을 당하려고 크루즈를 했나. 주변머리 특별히 없었던 제가 그 옛날을 생각하니 살아온 게 주님의 은혜, 부처님의 광명입니다.

그렇게 만난 산토리니. 나는 심지어 계단 올라간 기억도 가물거립니다. 그렇게 그리스를 와도 저는 섬에는 오지 않았지요. 첫 느낌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이번에도 섬에 오고 싶지 않았는데 언니가 말하길 없을 때 간 거랑 있을 때 간 거랑 같냐? 다시 가봐, 징크스는 깨라고 있는 거야

이렇게 산토리니입니다. 과연 이제 깨어날 산토리니는 어떤 곳일까요. 삶에 기대하지 말아야한다는데 저는 목욕재개하고 해 뜨는 산토리니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세상에 산토리니 좋구나.

아틀란티스(Atlantis) 서점

아틀란티스는 어린 시절 나에게 끝없는 상상의 세계였다. 고도로 발달됐다던 고대 도시가 한순간 물속으로 빨려들었다는데 그 곳을 찾으면 고대로 가는 길을 찾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해 많은 호기심 어린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아마도 산토리니가 그 사라진 아틀란티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두 영국 청년이 산토리니에 놀러왔다가 즉흥적으로 서점이 없다는 걸 발견하고 이아마을에 아틀란티스라는 이름의 서점을 열었다. 누가 관광지에서 서점에 올까.

그러나 예상을 깨고 어린 시절 읽었던 아틀란티스의 전설과 신화를 찾아 사람들은 서점에 들어섰다. 맘속에 숨겨뒀던 수많은 호기심들을 자극하면서 서점은 대박이 났다. 나도 갔다. 프랑스에 가면 셰익스피어 서점이 있는데 아마도 여기서 모티브를 얻었을 것이다.

호기심을 현실로 불러올리는 번득이는 창의력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영예를 가져다줬다. 아틀란티스 서점의 힘은 새로움이 아닌 익숙함이다. 골룸이 나올 것 같은 지하방 좁은 공간은 그렇게 세계인에게 꿈이 됐다.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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