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獨보다 中에서 환대…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맞아 재조명

마르크스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의 탄생 200년이 되는 5일(현지시간) 그의 고향 독일 트리어에서는 기념식이 열린다.

1천 여 명이 남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할 전망이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기념사를 한다.

높이 5.5m, 무게 2.3t에 달하는 마르크스 청동상의 제막식도 열린다.

트리어의 박물관 두 곳에서는 마르크스의 삶과 업적에 관련한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독일 각지에서 400여 개의 관련 전시물을 모았다.

이런 행사는 주로 트리어 시(市)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마르크스를 기념하는 움직임이 미약하다.

반면, 하루 앞선 4일 마르크스가 생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중국 베이징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 등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대회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도 마르크스의 업적을 조명하고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렸다.

트리어의 마르크스 청동상도 중국이 기증한 것이다.

독일 사회에서도 그동안 거리를 둬오던 마르크스를 놓고 탄생 200주년을 맞아 재조명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계승자임을 내세운 중국이 압도하는 셈이다.

 

◇ 프롤레타리아 혁명 예견한 마르크스…불평등 심화 속 부각

마르크스는 1818년 트리어에서 태어나 본 대학에서 공부한 뒤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프랑스 혁명 등을 연구했다. 이후 벨기에 브뤼셀로 건너가 엥겔스와 '독일 이데올로기'를 저술하며 유물론적 역사관의 기초를 완성했다.

1848∼49년 독일혁명 시기에는 '신(新) 라인신문'의 주필로 활동하며 혁명 전선에 섰으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추방당했다.

이후 1851년부터 영국에서 활동하며 자본론을 집필한 뒤 생을 마쳤다.

마르크스는 생산방식과 생산력 같은 하부구조가 법과 개념 등의 상부구조를 좌우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만들어냈다.

그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노동 소외를 낳으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붕괴한 뒤 평등사회인 공산주의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혁명을 주창했다.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러시아 혁명과 중국의 마오주의 토대가 됐다.

그의 예언대로 자본주의가 몰락하고 공산주의가 승리하지 않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각성제로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특히 전 세계 곳곳에 만연된 신자유주의로 양극화와 인간 소외 현상이 심화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틀로도 마르크스주의는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 마르크스에게 문을 여는 독일…냉담한 시선도 여전

독일에서도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분석하는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재조명받고 있다.

학계에서도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이론에 대한 평가 작업이 예전보다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마르크스의 고향이지만 애초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사실상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독일 통일로 인해 공산주의는 실패한 낡은 이론이 간주됐다.

더구나 전체주의로 흐른 동독체제에서의 인권유린 문제가 통일 후 부각되면서 더욱더 동독의 이념적 기반이었던 마르크스주의는 천대받았다.

독일 복지사회의 기반이 되는 사회민주주의 전통에도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은 크지 않다.

트리어에서 마르크스 청동상을 받아들이는 문제를 놓고 시의회가 투표까지 벌인 것은 주민 반발이 그만큼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주민들은 마르크스 청동상을 순례하기 위해 중국 관광객이 몰려들 것을 우려하기까지 했다.

동독체제의 희생자 관련 단체도 강력히 반발했다.

이에 트리어 시 관계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한 전체주의 국가 때문에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항변하고 있다.

볼프람 라이베 트리어 시장은 최근 AFP 통신에 "올해는 마르크스와 그의 업적을 재평가할 기회"라며 "우리는 통일을 이룬 지 30년이 지났다. 마르크스는 우리 도시의 가장 위대한 아들 중 하나이다"고 말했다.

5일 트리어에서는 마르크스에 대한 찬반 시위가 동시에 열리는 풍경도 연출될 예정이다.

동독체제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위가 극우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주도로 열릴 계획이다.

반면, 좌파당은 자본주의의 착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다.

 

◇ 마르크스 재조명 강풍부는 중국…체제 강화 도구

중국이 트리어에 마르크스 청동상을 선물한 데에는 마르크스주의의 계승자가 중국이라는 숨은 뜻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청동상을 제작한 유명 조각가 우웨이산은 인민일보 기고문에서 "동상 기증은 중국의 이론적 자신감과 노선의 자신감, 제도의 자신감, 문화의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노선·이론·제도·문화에 대해 4개 자신감'을 가지라고 한 시 주석의 주장을 동상 제작에 투영했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시진핑 사상'을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반열의 국가 지도사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 마르크스주의를 부각한 셈이다.

중국은 지난 2014년 공산주의의 또 다른 창시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고향인 바르멘에 엥겔스 동상을 기증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이날 200주년 기념대회에서 1시간여에 걸친 연설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당·국가 지도사상으로 사상적 무기를 제공했고 중국을 낡은 동방대국에서 인류사상 일찍이 없던 발전의 기적을 이루게 했다"고 말했다.

3∼4일에는 관영 중국중앙(CC)TV는 2부작 다큐멘터리 '불굴의 마르크스'를 방송하며 마르크스주의를 찬양했다.

또한, 중국은 지난달 '마르크스주의 대(大)사전'도 발간하고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 이후 사회주의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왔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와 함께 동부 장쑤성 난징대 재학생 일행은 최근 트리어를 비롯해 베를린, 쾰른, 벨기에 브뤼셀 등 마르크스가 거주했던 장소를 찾아 마르크스를 기념하는 행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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