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팬주룽의 마지막 전쟁⑩

대망새는 낙타산에서 야수들을 해치울 때처럼 몸을 움직였다. 대망새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안개같은 꼬리가 따라 다녔다. 시간보다 빠른 몸놀림이었다. 고다리는 대망새의 모습을 눈으로 잡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이 때 대망새의 몸이 먹이를 발견한 상어처럼 불쑥 솟구쳐 올랐다. 생각의 회로를 잘라 버리자 본능이 온 몸을 던져 공격을 하라고 시킨 것이다. “퍽~”
엄지와 검지사이로 목젖을 맞은 고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다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대망새에게로 달려들었다. 최대의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대망새는 바위처럼 우뚝 서 있었다. 대망새는 호랑이처럼 날아와 목을 거머쥐려는 고다리의 손을 피해 사타구니로 쏟아져 들어갔다. “빠각~”

강철같은 오른 주먹으로 재빨리 고환과 명치를 가격했다. 대망새의 주먹은 고다리의 고환을 통과해 볼기 뼈를 박살내 버렸다. 산 같은 고다리가 주저앉았다. “빠악~”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대망새의 도끼가 고다리의 정수리에 내리 꽂혔다. “퍼억~”
그러나, 대망새의 몸이 공중으로 번쩍 들려 내동댕이쳐졌다. 고다리가 정수리에 도끼를 박은 채 주먹으로 대망새의 명치를 사정없이 가격한 것이다. 대망새는 괴로워 몸을 뒹굴뒹굴 굴렸다. 고다리는 신경질적으로 도끼를 빼내 집어던졌다. 도끼에 이마를 맞은 애꿎은 댕글라 병사 한 명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고다리는 괴로워하는 대망새에게 다가가 집채만 한 바위를 들어 올렸다. “대망새!”

오소리눈과 대적해 싸우고 있던 소리기의 절규가 애간장을 녹였다. 대망새는 본능적으로 몸을 굴렸다. 바위는 대망새가 쓰러져 있던 또 다른 바위를 때리고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고다리는 머리에서 피를 굴먹굴먹 쏟으며 대망새를 ?아 술 취한 곰처럼 뛰어 다녔다. 대망새는 고다리를 피해 다니며 군사들에게 싸움을 중지하라는 소리를 외쳐댔다.

그 사이 소리기는 배라기와 협력해 오소리눈을 물리치고 있었다. 오소리눈은 대망새군이 쏜 화살에 한쪽 눈을 맞아 왜틀비틀 흐느적거렸다. 마침내 소리기의 작살에 한 쪽 눈마저 실명을 하자 오소리눈은 그대로 주저앉아 목이 잘리고 말았다. 오소리눈은 이제 그 지긋지긋한 바보소리를 듣지 않게 된 것이다. 이쯤 되니 댕글라군은 더 이상 싸울 기력을 잃고 말았다.

고다리는 도망치는 대망새만을 쫓았다. 그러나 움직일수록 정수리에서 피가 왈칵왈칵 쏟아져 나왔다. 댕글라 병사들은 병장기를 내려놓고 넋을 놓은 채 기가 막힌 광경을 바라보았다. 대망새의 병사들도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발로 맨땅만 우비적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고다리를 피해 다니던 대망새가 널따란 바위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러자 고다리도 남아있는 기력을 다하여 바위 위로 날아올랐다. 대망새는 고다리가 바위로 솟구치는 힘을 이용하여 목덜미에 또 다시 도끼를 박아 넣었다. 고다리의 몸이 맥없이 바위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대망새는 호랑이처럼 뛰어내려 고다리의 등에 검은색 돌로 만든 비수를 깊숙이 쑤셔 넣었다. “쿼억~”

고다리가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입에서 검붉은 선혈을 쏟아냈다. 대망새는 단도를 빼내 다시 날개 뼈와 목 뒷덜미를 찔렀다. 등 쪽 급소를 모두 찔린 고다리는 그러나 또 다시 일어섰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피투성이였다. 대망새를 잡으려 손을 휘둘렀지만 시야가 어룽거려 헛손질만 해댔다. 마침내 대망새의 창이 고다리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

대망새는 고다리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고다리는 생각하는 힘을 잃고 온 몸이 점점 무기력해졌다. 고다리가 흘린 피가 들판의 식물들을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마침내 고다리가 무릎을 꿇었다. 온 몸에 피가 모두 빠져나와 더 이상 일어설 기력을 잃고만 것이다. 고다리의 눈동자는 멍청하게 초점이 없었고 야무지게 단단하던 근육들은 축 늘어져 애처롭고 불쌍해 보였다. 고다리는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서히 바위가 되어갔다. “……”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댕글라의 영웅이 천년의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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