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아고라 박물관에서

나와 박물관

나는 박물관이 좋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유물은 고향 떠나 단체로 수용소에 갇혀있는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로또 맞았다. 따뜻하고 시원하고 쾌적한 곳에 온 세상 보물들을 다 모아서 친절하게 설명까지 곁들이며 나를 가르친다. 너무 고혹적이어서 가슴이 떨리다가 어느 순간 가슴 미어지게 뭉클하기도 하다. 게다가 온몸이 즐기는데 가격도 저렴하다. 대한민국은 무료이기까지 하다. 어디서 하루 종일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다시 와서 또 봐도 그 감동은 배가 될 뿐 줄어들지 않는다.

너무 유물이 많아 한 점 한 점 독대하기도 어려워 어쩌면 한 번에 박물관을 다 본다는 건 거짓말인 것 같다. 누구 손에 들려있던 보물이 세월을 걸러 나에게 온 걸까.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을까.

그래서 그런지 고맙고 또 고맙다. 있어줘서 고맙고 견뎌줘서 대견하다. 나라의 자존감이 바닥일 때 유물은 우리의 자존심이 돼주곤 했다. 상황이 극악으로 치달아도 유물은 끊임없이 우리는 이런 약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소리 없이 강력한 증인이었다.

박물관 속 지혜의 숲에서 감동을 넘은 숭고함과 만나고 나면 왠지 나도 귀해질 것만 같다. 착해질 것만 같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표현하면서 끼니는 꼭 챙긴다. 분명 나에겐 박물관이 스승이고 친구이며 또 인생이다.

주인공의 손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손이 수줍다. 잘 보면 손가락 사이에 돌조각이 남아있다. 잘 부러지는 손가락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었다. 일이라고는 한 번도 안한 것 같은 통통하고 고운 손이었다. 나도 한때 저랬었는데. 8호를 끼던 손가락은 억센 아줌마손이 됐고 나는 반지를 포기했다. 반지는 제왕에게 주는 걸로 하겠다.

부처님의 생김새를 기록한 책에는 32()이라는 항목이 있다. ‘존자 고따마는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는 손발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프로디테의 인상도 부처님과 다름없는 물갈퀴였다.

사실 이 조항 뒤에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신이 만든 조각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 인간이 만든다. 다만 그 조각 솜씨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들어도 부러지면 큰 낭패다. 조각가들은 납품할 때마다 곤욕이었다. 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부러지면 몇 달 고생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잘 부러는 손가락은 일단 만들다말고 납품하고 설치장소에서 손가락 사이를 제거했다.

그러나 바쁘던 어느 날 장인은 이를 떼어내지 못했고 주지스님은 감동하셨다. 인간과 다른 그 손가락의 비범함을 좋아해서다. 그렇게 부처님도, 아프로디테도 개구리 손가락이 됐다. 어느 장인의 실수는 부처님과 아프로디테의 신성이 됐다. 이렇게 동양과 서양은 같다.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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