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은 대개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일방적으로 긍정적이거나 반대로 일방적으로 부정적이기만 한 일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양립할 수밖에 없는 가치를 표현할 때 동전의 양면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최근 선거철을 맞아 투표 참여 연령을 만 18세로 하향 조정하자는 의견이 비등하고 있다. 이를 놓고 찬반의 의견이 엇갈린다. 18세면 충분히 인지력이 발달돼 있고,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와 정확한 판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연령에 투표권을 부여했을 때 부화뇌동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팽팽하다.

2년 전 세상을 바꿔보자고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들이 전국을 들썩이게 했다. 그 무렵 다양한 형태의 자기표현과 정치참여가 이루어졌다. 시위 현장에서는 자유발언대라는 시간을 마련해 누구든 무대에 올라가 자신의 정치적 소회를 밝힐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나서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던 다양한 계층들이 무대에 올라가 국민의 입장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며 공감을 얻어냈다. 그 중에도 특히 눈에 띄는 일은 소외계층의 시민들이 속 시원히 세상을 비판하고 국정을 나무랐던 일이다.

이들과 함께 또 눈에 띈 계층이 바로 청소년들이었다. 청소년들 가운데 일부는 자유발언대에서의 발언 내용이 유튜브 등을 통해 인터넷으로 세상에 빠르게 알려졌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실상 그들이 발언대에 올라가 뿜어낸 말들은 진솔하고 현실적이어서 수많은 시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했다.

실상 기성인들은 청소년들을 항상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만 여기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이 아직 미숙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미숙하기 때문에 아직 온전히 자신의 정치적 표현을 할 수 없고, 판단력도 미흡해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논리이다.

물론 같은 연령의 청소년이라 해도 개인마다 의식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기성세대들이 염려하는 대로 미숙해서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도 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기성세대 못지않은 정치적 판단을 하는 청소년들도 세상엔 많다.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정치적 식견이 취약한 이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치 의식수준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나이가 일정 연령 아래라고 해서 정치참여를 배제하는 일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일은 단순히 결정할 일은 아니다. 심사숙고해서 사회전반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어떤 판단을 하던 간에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들을 항상 미숙한 존재로만 바라보려는 의식의 틀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점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