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재난의 예방 및 복구에 따른 비용 부담을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적립하고 있는 재난관리기금이 금고에서 잠자고 있다. 기금 용도에 대한 규정을 너무 제한적으로 해놓은 바람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난관리기금 조성은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에 따라 각 지자체가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의무 사항이다. 최근 3년 동안의 지방세법에 의한 보통세의 수입 결산액의 평균 연액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적립해야 한다. 이 기금은 공공 분야의 재난 예방 활동, 감염병, 가축 전염병의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 대응사업 등에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기금의 용도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활용하는데 지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재난관리기금은 곳간에 쌓여 가는데 용처를 공공부문 재난 예방이나 방재시설 보수 보강 등으로 한정시켜 놓아 ‘그림의 떡’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대전시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적립된 재난관리기금은 1274억 5600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운용은 2014년 27억 원, 2015년 23억 원, 2016년 23억 원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엔 지진 위험도가 높아짐에 따라 공공시설물 내진보강 성능 평가 용역으로 기금을 더 활용할 수 있었는데 그래봐야 68억 원에 그쳤다. 대전은 타 지역에 비해 자연재해가 적어 재난관리기금의 적립률이 더 높은 편이다.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재난안전’의 개념을 더 확장해 용처를 넓혀주고 공공부문으로 한정한 기금의 운용 규정을 민간 재난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실제 대전시의 경우 자살이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자살예방사업의 일환으로 시와 5개 구에 설치된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운영비 등으로 이 기금을 수혈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규정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또 너무 공공부문에 한정돼 있어 지난 2016년 대전 동구 용전동 주택가 가스 폭발 사고로 1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도 민간부문 사고라서 이 기금에 손도 못 댔다.

물론 재난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관리기금을 충분히 비축해놓을 필요는 있다. 그러나 너무 용도를 제한해 놓아 활용도가 떨어지는 점은 개선해야 한다. 공공부문으로 너무 제한해놓은 것은 완화해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재난의 경우도 구호기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각 지자체마다 재난의 정도가 다른 만큼 재난관리기금 집행의 권한을 지자체에 대폭 위임해 각 지방의 사정에 맞게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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