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난이도 기술로, ‘직원과 함께’ 업계 판도를 바꾸다

이선동 ㈜일신오토클레이브 이사

대표가 아닌 직원이 회사와 이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 풀어낸다는 것. 쉬울 듯 보이지만, 회사를 두루 돌아보는 혜안(慧眼)과 내면의 진심(眞心)을 끌어내야한다는 점에서 일면 가볍게 볼 일 만은 아니다.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이선동(44) ㈜일신오토클레이브 이사와의 만남은 그래서 반가웠다. 회사와 긴 인연을 쌓아가고 있는 평직원 출신 이사라는 궤적은 흥미로웠다. ‘회사와 함께 성장’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그의 말 마디마디에서는 CEO(김현호 대표), 타 직원들과 함께 키워나간 회사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던 남자, 8년 만에 이사된 비결은 ‘노력’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말하는 이선동 이사, 그는 인생에 있어 3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과 함께, 준비돼 있지 않으면 이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준비된 자세’를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에게 ㈜일신오토클레이브와의 만남은 그 하나의 기회였을지 모른다. 평직원으로 입사해 15년 간 동행하고 현재는 이사라는 직책으로 회사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에서다.

시작지점은 달랐다. 대학원에서 재료분야를 전공한 이 이사는 과거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앞선 회사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 저미는 불안, 미래에 대한 염려가 컸다. 이 이사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일신오토클레이브와의 인연이 시작된 배경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충북지역에 있던 이전 회사 생활은 좋았지만 한편으로 발전가능성이 없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미래가 재미 없을 것 같아 퇴직을 했고 대전으로 와 ㈜일신오토클레이브와 동행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힘 줘 말했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라고.

회사와 함께한 분주한 발걸음, 어느새 그는 기술연구, 납품 등 ‘멀티플레이어’가 돼 있었다. 업무는 고됐지만 ‘죽으라고 일했고’ 이로인해 배우는 점이 많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고생을 많이 했죠. 인원이 적은 중소기업의 현실에서 여러 일을 맡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큰 자산이 돼있더군요.”

노력의 결실은 속찬 열대과일처럼 달았다. 사원으로 입사한지 8년 만에 이사로 승진했다. 초고속 승진의 비결. “고객들과 약속한 건 꼭 지켜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수주 받는 입장이지만 회사 자존심이 꺾이는 게 싫어서 완벽한 장비를 납품하려고 노력했어요”라는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준비된 자세와 이를 뒷받침한 열정, 그리고 이런 노력을 알아본 회사란 3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는 아닐까.

#전 직원이 합심해 고생... 최고 난이도 기술 개발 밑바탕
㈜일신오토클레이브는 지난 1993년 전신인 일신엔지니어링 창업을 시작으로 국내 고온·고압분야 선도기업으로 발전해 왔다. 이 이사가 입사한 2000년대 초반 당시는 국내 기술이 부족해 압력용기는 물론 실험용 압력용기 조차 수입해 쓰던 시기였다. 그러나 직원들은 이런 현실에 주눅들지 않았다. “기술연구를 통한 최고난이도의 제품 개발을 했다”는 이 이사의 말처럼 회사는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며 최고수준의 제품을 개발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은 주효해 2000년대 후반 ㈜일신오토클레이브 도약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회사는 지난 2007년 난분해성 초임계수산화 장치를 개발했고 이후 유체응용기술, 초고압 분산기, 등방향 압축 성형기, 항온가압챔버 등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진전을 이뤘다. “양산설비로 지금까지 꾸준히 매출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전 직원이 합심해 고생한 끝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해 글로벌 1위를 향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지난 2015년 납세자의날 ‘모범 납세자 표창’을 받았고 2016년 한국무역협회의 백만불 수출탑을 쌓는 등 모범적이면서 긍정적 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결실을 맺는 과정에서 물론 어려움은 있었다. 길고긴 설비 개발과 완성까지 예측하기 쉽지 않은 변수들은 그 중 하나였다. ‘내가, 직원들이 이 회사의 마지막이라는 신념을 갖고 계속 고민했고 결국 고객과 함께 웃었다’는 그의 말처럼, 전 직원의 합심은 남들이 쉽게 넘지 못했던 ‘문제’의 허들을 뛰어넘어 도약하게 했다. “전 직원이 함께 해 성공해서인지 고생한 직원들과의 유대 관계도 더욱 좋아졌습니다”라고 이 이사는 활짝 웃었다. 그 속에 지난해 여성가족부 주관 '가족친화인증기업'인 ㈜일신오토클레이브의 분위기가 녹아 있었다.

이 이사는 철학을 담아낸 오늘을 벗 삼아 더 큰 꿈을 그리는 회사의 내일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 기업은 초기 서울에서 시작해 대전의 국가연구단지, 기업 연구원에서 설비 개발을 하며 성장한 회사입니다. 이제는 국토의 중심인 대전에서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고온, 고압 분야의 1등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대전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꾸준히 고용할 생각입니다.”

# 청년들 ‘장밋빛 낙관’이 아닌 냉정한 자기 평가를
미래에 대해 고민했던 경험과 평범한 사원에서 이사까지 올라온 삶의 궤적. 요즘 청년들에게 들려줄 조언이 적잖아 보였다. 그는 “이미 세상은 정해진 기준으로 구직자에게 보이지 않는 등수를 매기며 지속적으로 경쟁을 시킨다”며 “이는 사람뿐만이 아닌 동물 세계에서도 마친가지로 강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즉 ‘청년들이 현재 자신의 위치가 구직자 중 어디인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사가 오늘을 사는 청년들에게 전하는 말은 막연한 ‘장밋빛 낙관’ 같은 것이 아니라, 작금의 현실을 투영한 따끔한 지적이다. “본인이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 기업의 규모에 상관없이 취업한 후 최소 3~5년간 본인의 커리어를 쌓은 것이 현실을 인정하며 미래에는 더 발전된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작지만 대기업 못지않은 기업이 많이 있다는 점을 알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의 끝에서 이 이사는 회사의 성장목표와 현실 사이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에 대해 언급했다. 지역사회 여타 중소기업의 임직원이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지자체가 고민해야 할 대목으로 들린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설비 개발이 필요하며, 설비의 판매 단가가 높아져야 하는데 개발과 생산을 동시에 진행하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공장의 3~4배는 돼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에 대전 내에서 넓은 곳으로 이주하려 해도 분양 받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역 분양에는 기계업종 보다는 바이오업종을 우선 배정해 경쟁률이 너무 높고 나중에는 대전을 벗어날 수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생깁니다.”
“대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회사를 선별, 새로운 공장부지 분양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바람섞인 견해를 귀담아 들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글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사진=전우용 기자

 

고압을 이용한 분산기(초고압 균질기)인 ㈜일신오토클레이브 나노디스퍼져- NH 8000

◆㈜일신오토클레이브(http://suflux.com/KO/)는.
지난 1993년 원자력 발전과 화력 발전 등에 필요한 압력용기 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설립된 회사로 이후 다양한 압력용기와 응용제품 등을 개발·제작하고 있다. 추출장치를 개발했으며 지난 2002년 초고정도 수압, 가스압 시험기 개발에 성공했다. '2013 대한민국 IT Innovation 대상‘ 특별상과 안전보건활동 우수사례 안전인증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비파괴검사실(RT룸)을 준공한 ㈜일신오토클레이브는 대전시 유망중소기업에 선정되는 등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 ‘고객의 생각을 현실로 구현해 주는 기술’을 철학으로 고객의 생각과 마음을 제품에 담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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