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대망새의 통치①

올래의 공동묘지 들판, 태양을 선뜻 가린 구름사이로 영롱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아득한 태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대규모 전쟁을 일으킨 고다리가 죽자 병사들은 말을 못하는 마법에라도 걸린 듯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소금기둥이 될 것 같았다. 그들은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다리의 주검 앞에 한 동안 앉아있던 대망새가 분연(奮然)히 일어서 바위위로 올라갔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무나 아픈 전쟁을 치렀다. 잘못된 생각을 한 몇 사람의 야욕이 잔인한 살상을 하고 우리의 가족들이 억울하게 죽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명분 없는 전쟁에 휘말려 팬주룽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전쟁을 교훈삼아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 이제부터 팬주룽은 하나다. 그렇지 않으면 저 고다리와 비죽처럼 부족 간에 끊임없는 정복전쟁을 벌여 팬주룽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팬주룽이 강하게 뭉쳐 하나가 되어야만 다른 세상 사람들이 감히 침략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가 된 우리는 이제부터 먹고 자고 입는 것은 물론 즐겁고, 건강하고, 편리한 것들을 충족시켜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팬주룽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낙원이 될 것이다. 팬주룽을 지상 최고의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나와 함께 가겠는가!”

올래드르가 병사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병사들은 대망새의 연설에서 천년의 희망을 품었다. 매득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대망새를 바라보고, 미리은은 존경이 넘치는 눈물을 흘렸으며, 병사들은 달뜬 소리들을 허공으로 피워 올렸다. 배라기와 소리기는 의기양양한 콧장단을 치며 대망새를 자랑스러워했다. “모두들 올래로 돌아가 대동단결의 장을 만듭시다! 팬주룽이 통합된 경사스런 날 아닙니까?”

재기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화합의 잔치를 벌이자고 했다. 재기의 말대로 오늘은 오랜 전쟁 끝에 팬주룽이 하나가 된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대망새는 죽은자들을 바위 밑에 매장하도록 하고 그들이 생전에 아끼던 물건들을 함께 넣어주었다. 고다리는 옥으로 만든 그의 갑옷과 무기 등을 모아 대망새에게 죽음을 당한, 대망새가 백성들에게 희망을 연설한 바위아래 묻었다. 소낵의 바위에 버금가는 커다란 바위였다. 그리고 그 무덤들을 ‘바위무덤’이라고 불렀다. 이 바위무덤들은 훗날 노고록 전 부족의 무덤양식이 되고, 노고록의 북쪽 광대한 대륙으로 뻗어나가 전 세계의 무덤문화를 지배하게 된다. “……”

죽은자들을 바위무덤에 묻고 영혼을 위로하는 제례를 마치자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대망새는 재기의 의견에 따라 올래의 버섯지붕으로 향했다. 삼천 여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쾌연하게 걸어가는 강변, 바닷가 억새위로 날아오른 갈매기 떼가 붉게 저무는 석양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올래에서 대화합의 잔치를 마친 대망새는 다음날 참모들과 버섯지붕에서 대대적인 회의를 개최했다. 통합된 팬주룽, 즉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 골격을 갖추는 회의였다. 매득이 적극 앞장서 대망새를 ‘바가나치’로 추대했다.

바가나치는 신을 대신해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써 사실상 국왕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대망새는 완강히 사양했다. 맬싹에 있는 솔롱고스로부터 인정을 받지 않았을 뿐더러 바가나치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참모들이 이를 허락할 리가 없었다. 팬주룽의 화합을 위한 구심점이 반드시 필요하기도 했지만 누구도 대망새를 대신해 바가나치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 중 한명이 대망새가 팬주룽을 다스리는 바가나치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전 병영에 전달됐다. 대망새와 바가나치를 연호하는 소리가 점차로 커져 장마철 개구리들의 합창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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