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발간…"김정은 급하고 거친 성격"

태영호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

북한이 2006년 1차 핵실험 감행 후 중국이 강하게 경고하자 '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며 맞받아쳤다고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자서전을 통해 밝혔다.

태 전 공사는 14일 펴낸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기파랑, 544쪽)에서 북한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와 북한의 내부 모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과 일화 등을 소개했다.

1차 핵실험으로부터 사흘 후인 2006년 10월 12일 리자오싱(李肇星) 당시 중국 외교부장과 강석주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진행한 회담 기록문에 의하면 리 부장은 "조선은 이번에 핵실험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산을 넘었다. 이제라도 핵개발을 중지하고 경제건설에 전념하기 바란다. 핵개발을 중지한다면 중국은 조선에 대한 경제군사적 지원을 늘릴 것이다. 핵으로는 조선의 체제를 지킬 수 없다. 경제부터 조속히 회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

그러자 강 부상은 "조선반도 비핵화란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며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반도는 결코 비핵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오직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조선반도 비핵화가) 가능하다"며 "수령님의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중국이 조선과 미국의 관계를 중재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저자는 소개했다.

강 부상은 또 과도한 군비경쟁이 소련 붕괴로 이어졌다는 리 부장의 지적에 맞서 "내가 지금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리자오싱)과 담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청나라 사절 이홍장과 회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소련이 붕괴된 것은 미국과의 군비경쟁 때문이 아니다. 당이 인민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게을리했고 당 자체가 부패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김정은 위원장의 성격에 대해 태 전 공사는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고 소개했다. 2013년 7월 재개관을 앞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전쟁기념관)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보고를 받은 김 위원장은 물바다인 지하에 구둣발로 들어간 뒤 "내가 그렇게 불조심하라고 했는데 주의 안 하고 무엇을 했느냐"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욕을 했다고 저자는 소개했다.

또 2015년 5월 김 위원장이 자라양식공장을 현지지도했을 때 새끼 자라가 죽어있는 것을 보고 공장 지배인을 심하게 질책한 뒤 처형을 지시해 즉시 총살이 이뤄졌다고 저자는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에 대해 "개성공단이 조선 체제에 장기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하지만 얻은 게 더 많다. 우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을 벌었다"고 말한 것으로 저서에 소개됐다.

김 위원장은 또 "개성 시민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제와 관리가 용이해졌다. 다른 지역은 장마당 때문에 주민 통제가 얼마나 힘들어졌나. 개성 시민 5만 명이 매일 한곳에 모여 일하고 퇴근하는데 따로 무슨 관리가 필요한가. 총체적으로 우리가 훨씬 이익이다. 이런 경제특구를 내륙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곳을 14개 더 만들라"고 말했다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

또 2014년 영국의 '채널4'가 북핵 문제를 다룬 연속극 '오퍼짓 넘버'(Opposite Number) 제작 계획을 밝히자 김영철 당시 국방위 정책총국장이 평양 주재 영국대사를 소환해 '영국 정부가 반북 드라마 제작을 중지하지 않으면 영국 내에서 상상할 수 없는 보복행위가 일어날 것이고 그 책임은 영국 총리가 져야 할 것'이라는 요지의 말을 전달했다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 태 전 공사는 '말하자면 채널4 청사를 폭파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5년 9·19공동성명 체결 이후 북한 전력공업성 전문가들이 합의에 변전소 건설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며 '외무성이 합의를 잘못했다'고 비난했고, 외무성은 '시간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치고 있으니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대응했다고 태 전 공사는 주장했다.

아울러 태 전 공사는 저서에서 평양시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인 노동당 본청사 3층 서기실의 역할에 주목했다. 노동당 본청사는 지난 3월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을 맞이한 곳으로, 당시 남측 고위인사에게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반적으로 본청사가 우리 '청와대' 격이라면 서기실은 '비서실' 역할을 한다고 분석되는 곳이다.

태 전 공사는 "3층 서기실은 기본적으로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라며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주민들이 김씨 부자의 실체를 알게 되면 3층 서기실은 와해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3층 서기실'은 대통령 비서실에 가깝다. 이곳은 중앙당 일꾼들도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는 완전한 금지구역으로 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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