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위원장

 

이성우 위원장

대전은 과학기술도시라고 말한다. 70년대 초반 대덕연구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한 이래 대전시와 과학기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보였다. 대전시가 일찍이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 창립을 주도한 것도 대덕연구단지가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대전시를 4차 산업혁명 특별시로 육성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울 때도 시민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과연 대전시는 과학기술도시라고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을까? 대덕연구단지 일원을 유일하게 연구개발특구로 지정하고 육성했던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2005년부터는 부산, 대구, 광주 등의 요구에 따라 연구개발특구를 전국으로 확대했고, 최근에는 소규모 특구 지정도 가능하게 법령을 개정하여 전국 어디라도 연구개발특구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대덕연구단지에 자리잡은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들도 여러 지역에 분원을 설치함으로써 더 이상 대전만의 전유물은 아닌 상황이다.

대전시와 대덕연구단지의 소통과 교류가 활발하고, 대전시민들이 실생활에서 과학기술에 기반한 삶을 더 누리고 있다면 과학기술도시라고 할 만하겠지만, 딱히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도 부족하다. 대전시가 작년에 수립한 제5차 과학기술진흥 종합계획을 보자. 4차 산업혁명 선도와 R&D기반 확충, R&D 성과 확산을 3대 전략으로 하고, 4차 산업혁명 특별시 육성, 지역 R&D 투자 확대, 지역기반 창업 및 기술사업화 활성화 등을 세부과제로 하고 있는데, 중앙정부의 과학기술정책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과학기술은 재벌이나 특정 계층의 이익 창출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보편적 삶의 질을 바꾸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투자 규모보다 시민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 과정에 시민들의 기대와 요구가 얼마나 반영되는가 하는 점이다. 대전시가 과학기술도시라고 내세우려면 정책 수립 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과학기술의 성과를 시민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며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잘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통념이다. 핵 발전소 문제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현대 과학기술은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자들 사이에서도 이해가 충돌한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재벌기업의 편에 섰던 많은 전문가들을 보면 과학기술자에 대한 막연한 신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시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통제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과학기술은 정치와 흡사하다. 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의 관심과 자발적 참여는 매우 활발해졌지만 정치에 대한 불신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대전을 진정 과학기술도시로 만들고 싶다면 과학기술과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더 높아져야 하고 대전시가 그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

스웨덴 고틀란드(Gotland) 섬에 비스뷔(Visby)라는 도시가 있다. 1982년부터 해마다 7월이 되면 알메달렌 공원을 중심으로 1주일 가량 정치페스티벌이 열린다.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로 알려진 이 축제에는 스웨덴 집권당과 거의 모든 정당, 시민단체, 노조 등이 참여한다. 저마다 부스를 열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정책을 알리고 거리 연설을 한다. 2015년에는 공식 집계된 주최자의 숫자만 3만5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놀랍다.

알메달렌에 관한 얘기들을 들으면서, 대전의 각 정당과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들이 시민들과 함께 과학과 정치를 주제로 페스티벌을 열고 대전시가 그것을 지원하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나라도 이미 서울시와 어느 정당이 각각 알메달렌 페스티벌을 본따서 정책박람회를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하니 그런 사례를 잘 연구해서 과학기술과 정치 페스티벌의 도시 대전을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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